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케미컬 에세이]
무슨 일의 기본을 착실하게 몸에 익히려면 많은 경우 육체적인 아픔이 필요한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최근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제목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회고록을 읽었다.
대학졸업 뒤 재즈카페를 경영하던 하루키는 29살이던 1978년 어느날
야구장에 갔다가 공을 치는 경쾌한 배트 소리에
‘그렇지, 소설을 써보자’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한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이듬해 문예지의 신인상을 타고 책으로 출판되면서
그의 작가생활이 시작됐다.
“이제부터의 긴 인생을 소설가로 살아갈 작정이라,
체력을 지키면서 체중을 적절히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3년 뒤 전업작가가 되기로 한 하루키는 이렇게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는 아침 5시 전에 일어나 밤 10시 전에 자는 규칙적인 생활을 20년 넘게 유지해오면서
‘상실의 시대’를 비롯해 많은 작품을 꾸준히 펴내며 세계적인 작가가 됐다.
하루키는 지금까지 25회나 마라톤을 완주했는데
그가 이렇게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까닭은 ‘소설을 착실하게 쓰기 위해서
신체 능력을 가다듬어 향상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보통 작가라면 불규칙한 생활과 일탈의 와중에 영감이 오면
절에 들어가 작품을 탈고하는 모습이 그려지지만
하루키는 “계속하는 것-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니 문득 수년 전 본 어떤 글이 생각났다.
미국의 월간과학지인 ‘디스커버’(Discover)에 실린 기사인데 제목이 멋있다.
Born to Run. 굳이 번역하면 ‘달리기 위해 태어난’ 정도인데 묘미가 없다.
기사의 요지는 인체의 많은 부분이 달리는데 적합하게 진화돼 있다는 것.
또 달리는 건 빨리 걷는 게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른 이동양식이라고.
우리 몸에서 가장 큰 근육이라는 큰볼기근 덕분에 사람은 엉덩이가 있다.
그런데 큰볼기근은 달릴 때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꼬리 역할을 한다는 것.
장딴지근육을 발꿈치뼈에 연결하는 아킬레스건이 이렇게 발달된 것도 달리기 위해서다.
목덜미 인대도 달릴 때 머리가 흔들려 충격을 받는 걸 막아주기 위해서 생겼다.
목이 긴 것도 달리 때 균형을 잡기 위해 어깨가 좌우로 움직일 때 머리가 따라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사람이 얼마나 달리는데 적합한 동물인지는 개를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개가 훨씬 잘 달릴 것 같지만 어느 거리가 넘으면 개는 더 이상 달리지 못한다.
체온이 올라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
심지어 말도 수십km 거리가 되면 사람에게 뒤진다.
사람이 이처럼 타고난 장거리주자가 된 건 사냥을 위해서라고.
선사시대 인류가 창이나 돌도끼로 동물을 잡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동물이 지칠 때까지 끈질기게 쫓아다녀 잡았다고 한다.
실제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는 부족을 조사한 결과 시속 6~9km의 속도로 하루에 35km를 달리는 걸로 나타났다.
참고로 마라톤 선수들은 42.195km를 대략 시속 19km의 속도로 달린다.
마라톤 선수들을 보면 하나같이 몸이 홀쭉하고 동작이 가볍다.
오늘날 만연된 비만과 당뇨병도 알고 보면
사람들이 ‘달리는 기계’인 자신의 몸을 제 용도로 쓰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20대 후반 직장 체육대회 때 5km 코스를 괜찮은 성적에 달린 적이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뛰는 것보다는 걷는 게 건강에 좋다’는 생각에
그 뒤 달리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TV에서 마라톤 대회에 모인 나이 든 사람들을 보면
‘저 나이에 무리하면 무릎관절에 문제가 생길 텐데’라며 혀를 차곤 했다.
당시 기사를 읽고 기자는 새로운 깨달음에 무릎을 치며 ‘그래, 내일부터 달리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다음날 ‘공기도 안 좋은데 오히려 해가 되지 않을까?’라는 자기합리화로 흐지부지된 기억이 난다.
그런데 또 이렇게 달리기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이번 주말 과학동아 마감이 끝나면 다음 주부터는 정말 달려야겠다.
하루키는 자신의 묘비명에 이렇게 써넣고 싶다며 글을 마쳤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 출처 : 동아사이언스 2009년 02월 17일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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