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76 사랑이란 사랑이란 버지니아 울프 사랑이란 생각이다 사랑이란 기다림이다 사랑은 기쁨이다 사랑은 슬픔이다 사랑은 벌이다 사랑은 고통이다 홀로 있기에 가슴 저려오는 고독 사랑은 고통을 즐긴다 그대의 머릿결 그대의 눈 그대의 손 그대의 미소는 누군가의 마음을 불태워 온몸을 흔들리게 한다 꿈을 꾸듯 생각에 빠지고 그대들은 그대들의 육체에 영혼에 삶에 그대들의 목숨까지 바친다 둘이 다시 하나가 될 때 아, 그대들은 한 쌍의 새처럼 노래한다. 2023. 8. 15. 술을 마주하고 술을 마주하고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탓하는가 부싯돌 불꽃처럼 짧은 순간을 사는데 넉넉한 대로 부족한 대로 즐겁게 살면 되는 것 크게 웃지 않으면 당신은 어리석은 사람 - 백거이 대주對酒 모두 5수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시는 5수 가운데 둘째 시다.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로 다투나? 부싯돌 불꽃처럼 짧은 순간을 사는데 넉넉한 대로 부족한 대로 즐겁게 살면 되는 것 크게 웃지 않으면 당신은 어리석은 사람 蝸牛角上爭何事 와우각상쟁하사 石火光中寄此身 석화광중기차신 隨富隨貧且歡樂 수부수빈차환락 不開口笑是痴人 불개구소시치인 - 백거이白居易의 『對酒(대주, 술을 마주하며)』 와각지쟁 [蝸角之爭] 蝸 : 달팽이 와, 角 : 뿔 각, 之 : 의 지, 爭 : 다툴 쟁 풀이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운다는 뜻으로, 아무.. 2023. 5. 21. 중심이라고 믿었던 게 어느 날 중심이라고 믿었던 게 어느 날 문태준 못자리 무논에 산그림자를 데리고 들어가는 물처럼 한 사람이 그리운 날 있으니 게눈처럼, 봄나무에 새순이 올라오는 것 같은 오후 자목련을 넋 놓고 바라본다 우리가 믿었던 중심은 사실 중심이 아니었을지도 저 수많은 작고 여린 순들이 봄나무에게 중심이듯 환약처럼 뭉친 것만이 중심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그리움이 누구 하나를 그리워하는 그리움이 아닌지 모른다 물빛처럼 평등한 옛날 얼굴들이 꽃나무를 보는 오후에 나를 눈물나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믐밤 흙길을 혼자 걸어갈 때 어둠의 중심은 모두 평등하듯 어느 하나의 물이 산그림자를 무논으로 끌고 갈 수 없듯이 2023. 4. 24. 홀로 아름다운 것은 없다 홀로 아름다운 것은 없다 문수현 산이 아름다운 것은 바위와 숲이 있기 때문이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초목들이 바람과 어울려 새소리를 풀어놓기 때문이다 산과 숲이 아름다운 것은 머리 위엔 하늘 발밑엔 바다 계절이 드나드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해와 달과 별들이 들러리 선 그 사이에 그리운 사람들이 서로 눈빛을 나무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 문수현 시집 『홀로 아름다운 것은 없다』 「오감고」 에서 2023. 4. 16. 낙양의 봄(鶯梭) 鶯梭(낙양의 봄) 劉克莊 (송나라 때 시인) 擲柳遷喬太有情, 交交時作弄機聲. 洛陽三月花如錦, 多少工夫織得成? 버드나무로 휙 몸 던졌다가 교목으로 휙 옮겨오며 마냥 다정스럽고 꾀꼴꾀꼴 때때로 베틀 소리를 낸다 낙양의 3월 꽃이 비단처럼 화사한데 얼마나 많은 공력 들여 짜낸 것일까? ☑ 해설 : 李炳漢 (서울대 교수 ․ 중문학) 남쪽에서 꽃소식이 전해진다. 계절의 변화는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다. 봄은 누가 이처럼 화사하게 꾸미는 것일까? 송나라 때 시인 劉克莊은 낙양의 3월 비단 같은 꽃 경치를 꾀꼬리가 베를 짜듯 짜낸 것이라고 읊었다. 詩의 제목도 ‘앵사(鶯梭)’로 ‘꾀꼬리가 베틀의 북처럼 버드나무 쪽으로 갔다가 교목 쪽으로 옮겨오고 하면서 짜낸 봄’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 2023. 4. 9.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 The Road not Taken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2023. 3. 25.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장 루슬로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도우려 들지 말아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그를 화나게 만들거나 상심하게 만들 것이다. 하늘의 여러 시렁 가운데서 제 자리를 떠난 별을 보게 되거든 별에게 충고하고 싶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 때론 생각해준답시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혹은 우정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의 등을 떠밀기도 하고, 누군가에 의해서 등을 떠밀리기도 한 적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 흔들리고 허우적거릴 때 각자의 남모를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그것이 일어서기 전의 힘겨운 .. 2023. 3. 12.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백창우 이렇게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 갈 수는 없지 가문 가슴에, 어둡고 막막한 가슴에 푸른 하늘 열릴 날이 있을 거야 고운 아침 맞을 날이 있을 거야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 테니 길을 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 길을 가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지 걸어가렴, 어느 날 그대 마음에 난 길 위로 그대 꿈꾸던 세상의 음악 울릴 테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이제부터 걸어갈 길 사이에 겨울나무처럼 그대는 고단하게 서 있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어, 끝이라고 생각될 때 그때가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 걸. 2023. 3. 11. 길 잃은 날의 지혜 길 잃은 날의 지혜 박노해 큰 것을 잃어 버렸을 때는 작은 진실부터 살려 가십시오. 큰 강물이 말라갈 때는 작은 물길부터 살펴주십시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흙과 뿌리를 보살펴 주십시오. 오늘 비록 앞이 안 보인다고 그저 손 놓고 흘러가지 마십시오. 현실을 긍정하고 세상을 배우면서도 세상을 닮지 마십시오. 세상을 따르지 마십시오. 작은 일 작은 옳음 작은 차이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작은 것 속에 이미 큰 길로 나가는 빛이 있고 큰 것은 작은 것들을 비추는 방편일 뿐입니다 현실 속에 생활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세상을 앞서 사는 희망이 되십시오. 2023. 3. 5. 옳다거니 그르다거니 상관 말고 임제의현(臨濟義玄) [시가 있는 아침] 是是非非都不關 옳다거니 그르다거니 상관 말고 山山水水任自閑 산은 산 물은 물, 그대로 두라. 莫間西天安養國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세계랴. 白雲斷處有靑山 흰 구름 걷힌 곳이 청산인 것을.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시비하지 말라는 그 말에 시비를 거느라고 바장인 날이 몇 날인가. 걷힐 흰 구름이 따로 있다는 그 말에 넘어간 고개가 몇 구빈가. 선사(禪師)가 장구채를 거꾸로 잡고 신명을 냈을 리야 있겠는가, 귓구녁에 귓밥이 수미산이겠지.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밝은 거울 또한 대(臺)가 따로 없네. 불성(佛性)은 항상 청정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가 있으리오 (菩提本無樹, 明鏡亦無臺. 佛性常淸淨, 何處有塵埃)”(육조혜능六祖慧能). 참 구구절절 옳기도 옳고, 말은 .. 2023. 2. 26. 길 가는 자의 노래 길 가는 자의 노래 류시화 집을 떠나 길 위에 서면 이름 없는 풀들은 바람에 지고 사랑을 원하는 자와 사랑을 잃을까 염려하는 자를 나는 보았네. 잠들면서까지 살아갈 것을 걱정하는 자와 죽으면서도 어떤 것을 붙잡고 있는 자를 나는 보았네.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고 집을 떠나 그길 위에 서면 바람이 또 내게 가르쳐 주었네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다시는 태어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자와 이제 막 태어나는 자 삶의 의미를 묻는 자와 모든 의미를 놓아 버린 자를 나는 보았네. 2023. 2. 19. 누가 울고 간다 누가 울고 간다 문태준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불러 본 사이 울고 갈 것은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나 저렇게 울고 떠난 사람이 있었다 가슴속으로 붉게 번지고 스며 이제는 누구도 끄집어 낼 수 없는 ☐ 아니나 다를까, 문태준이다. ‘말의 탱탱한, 유장한, 서늘한, 그러면서도 유머러스한 행진’의 한 구경꾼이었던 내가 ‘혹시 문태준’이라고 떠올렸던 그 짜임새 없는 짐작이 맞아버렸다. 중앙일보는 올 미당문학상 수상작으로 그의 저 시를 올렸다. 나보다 훨씬 젊고 나보다 몹시 뛰어난 사람을 보면, 얕고 좁직한 내 물그릇이 흔들리며 분한 기분.. 2023. 2. 12. 이전 1 2 3 4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