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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시76

길 가는 자의 노래 길 가는 자의 노래 류시화 집을 떠나 길 위에 서면 이름 없는 풀들은 바람에 지고 사랑을 원하는 자와 사랑을 잃을까 염려하는 자를 나는 보았네. 잠들면서까지 살아갈 것을 걱정하는 자와 죽으면서도 어떤 것을 붙잡고 있는 자를 나는 보았네.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고 집을 떠나 그길 위에 서면 바람이 또 내게 가르쳐 주었네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다시는 태어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자와 이제 막 태어나는 자 삶의 의미를 묻는 자와 모든 의미를 놓아 버린 자를 나는 보았네. 2022. 8. 21.
습관 Habit 습관 제인 허쉬필드 신발을 신을 때면 언제나 왼쪽 먼저, 그다음에 오른쪽 아침에 마시는 커피는 언제나 금 간 푸른색 잔에 티스푼으로 일곱 번 젓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문 닫기 전에 지갑이 있는지 열쇠가 있는지 주머니 만져 보기 우리는 어떻게 이런 작은 의식들의 약속을 믿게 되었을까 그것들에 의해 어제 알았던 우리가 오늘의 우리가 되고 내일의 우리가 되리라는 것을 칫솔을 쓴 후 흔들어 말리는 방식이나 목욕할 때 맨 먼저 씻는 부위처럼 너무 익숙해서 생각 없이 해 버리는 일들 타인들에게서 배운 습관들과 자기 자신도 모르는 자신만의 습관들 그런 것들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많이 결정짓는지 아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여행 가방을 열어 보라 거기 자신이 좋아하는 빨간색 스웨터 밝은색 줄의 목걸이, 호.. 2022. 8. 20.
진정한 여행 진정한 여행 나짐 히크메트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 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 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는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감옥에서 쓴 시 - 나짐 히크메트 [Nazim Hikmet, 1902. 1.20 ~ 1963. 6. 3] 터키의 혁명적 서정시인이자 극작가로 모스크바 유학시절 마야콥스키의 영향을 받았고 귀국 후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대표작.. 2022. 8. 14.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2022. 8. 13.
눈물은 왜 짠가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먹어 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 2022. 8. 7.
나는 배웠다 (I’ve learned) 나는 배웠다 (I’ve learned) 오마르 워싱턴(omer washington) I’ve learned that you cannot make someone love you. All you can do is be someone who can be loved. The rest is up to them. I’ve learned that no matter how much I care, some people just don‘t care back. I’ve learned that it takes years to build up trust and only seconds to destroy it.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랑 받을 만한 .. 2022. 8. 6.
가죽나무 가죽나무 도종환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 내딴에는 곧게 자란다 생각했지만 어떤 나무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 꼬여 있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 다만 보잘것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 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너무 많을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요구를 다 채워줄 수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는다. 이 숲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볼품이 없는 나무라는 걸 내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한가운데를 두 팔로 헤치며 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과 다른 게 있다면 내가 본래 부족한 .. 2022. 7. 31.
진정 바라는 것 진정 바라는 것 소란스럽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침묵 안에 평화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포기하지 말고 가능한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도록 하십시오. 조용하면서도 분명하게 진실을 말하고,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들 역시 할 이야기가 있을 테니까요. 목소리가 크고 공격적인 사람들을 피하십시오. 그들은 영혼을 괴롭힙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자신이 하찮아 보이고 비참한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더 위대하거나 더 못한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입니다. 당신이 계획한 것뿐만 아니라 당신이 이루어 낸 것들을 보며 즐거워하십시오.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당신이 하는 일에 온 마음을 쏟으십시오. 그것이야말로 변할 수밖에 없는 시간의 운명 안에서 진실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기 때.. 2022. 7. 30.
Nothing Gold Can Stay Nothing Gold Can Stay Robert Frost Nature’s first green is gold, Her hardest hue to hold. Her early leaf’s flower; But only so an hour. Then leaf subsides to leaf. So Eden sank to grief, So dawn goes down to day. Nothing gold can stay. 찬란한 어떤 것도 오래가지 못하리 로버트 프로스트 자연의 연초록은 찬란하지만 가장 지탱하기 힘든 색. 떡잎은 꽃이 되지만, 겨우 한 시간이나 버틸까. 곧 잎은 잎 위에 가라앉는다. 그렇게 에덴은 슬픔에 잠기고, 새벽은 낮으로 흘러가 버린다. 찬란한 어떤 것도 오래가지 못하리. ※ Rober.. 2022. 7. 24.
함께 있되 거리를 두어라 함께 있되 거리를 두어라 Kahlil Gibran But let there be the spaces in your togetherness, And let the winds of the heavens dance between you.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Love one another, but make not a bond of love: Let it rather be a moving sea between the shores of your souls. Fill each other’s cup but drink not from one cup. Give one another of your bread but eat not from the same loaf 서로 사랑하라.. 2022. 7. 17.
꽃 피우는 직업 꽃 피우는 직업 드니스 레버토프 자라는 것에 온전히 사로잡힌 그것은 아마릴리스 특히 밤에 자라며 동이 틀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바라보는 데는 내가 가진 것보다 약간의 인내심만 더 필요할 뿐 육안으로도 시간마다 키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해마다의 성장을 자랑스럽게 뛰어넘으며 헛간 문에 키를 재는 어린아이처럼 착실히 올라가는 매끈하고 광택 없는 초록색 줄기들 밑부분의 불그스름한 보랏빛 흔적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자라는 거의 알아차리기 힘든 수직의 돌기들 때로는 튼튼한 잎과 나란히 각각의 알뿌리에서 나온 두 개의 꽃대 둥근 끝을 가진 우아하고 기다란 줄기 충만함으로 빛나는 높고 꽉찬 꽃봉오리 어느 날 아침, 당신이 일어났을 때 그토록 빨리 첫 번째 꽃이 핀다 혹은 짧은 머뭇거림의 한 순간 막 피어나려.. 2022. 7. 16.
인생은 혼자라는 말 밖엔… 인생은 혼자라는 말 밖엔… 조병화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 외롭다는 편지를 보내는 것은 사치스러운 심사라고 생각하시겠지요. 나보다 더 쓸쓸한 사람에게 쓸쓸하다는 시를 보내는 것은 가당치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리고, 나보다 더 그리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그립다는 사연을 엮어서 보낸다는 것은 인생을 아직 모르는 철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겠지요. 아, 나는 이렇게 아직 당신에게는 나의 말을 전할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그저, 인생은 혼자라는 말밖엔. 2022.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