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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시76

입 속의 검은 잎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끔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 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 2022. 11. 5.
농담 농담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2022. 10. 9.
Youth - 청춘 Youth By Samuel Ulman Youth is not a time of life - it is a state of mind. It is not a matter of rosy cheeks, red lips and supple knees. It is a matter of the will, a quality of the imagination, a vigor of the emotions. It is the freshness of the deep springs of life. Youth means a temperamental predominance of courage over timidity of the appetite for adventure over the love of ease. This often.. 2022. 10. 8.
낯선 곳 낯선 곳 고은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 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아기가 만들어낸 말의 새로움으로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그리하여 할머니조차 새로움이 되는 곳 그 낯선 곳으로 떠나라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빈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 그는 숲이다. 나무 한 그루 들풀 한 포기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그에게는 모여서 큰 숲이 된다. 나는 그에게서 영원한 청년을 본다. 끝없이 낯선 곳을 찾아 떠나는 유목민 청년. 크고 거대한 곳으로가 아닌 날마다의 일상으로부터, 낡은 반복으로부터, 편안한 정주처로부터 과감히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이 .. 2022. 10. 2.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윤동주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날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 2022. 10. 1.
인생 - 로버트 브라우닝 인생 로버트 브라우닝 읽는 시간을 따로 떼어 두어라 그것은 지혜의 샘이기 때문이다 웃는 시간을 따로 떼어 두어라 그것은 영혼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 두어라 그것은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Save apart time to read it’s the spring of wisdom Save apart time to laugh it’s the music of your soul Save apart time to love for your life is too short 2022. 9. 24.
對酒 (술을 대하고) 對酒 (술을 대하고) 《唐詩》 백거이(白樂天) 蝸牛角上爭何事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운들 무엇 하리) 石火光中寄此身 (부싯돌 번쩍하듯 찰나에 사는 몸) 隨富隨貧且歡樂 (부귀빈천 주어진 대로 즐겁거늘) 不開口笑是癡人 (입 벌려 웃지 않는 자는 바보로다) ☑ 해설 작년 봄과 올해 봄 연이어서 우칭위엔(吳淸源)선생 부처를 동반하여 바둑 팬 여러분과 함께 중국 여행을 하였는데, 우선생은 각지의 고적을 견학할 때마다 비석에 쓰여 있는 詩 등에 대해 친절하게 해설해 주셨다. 우선생이 四書五經등 중국의 고전에 조예가 깊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唐詩에도 이토록 능통한 것에 경탄하였다.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시는 어떤 시입니까?”라고 물으니, 우선생은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다르지만 그 중에서 백거이(白樂天)의 .. 2022. 9. 18.
夢魂 (꿈속의 넋) 夢魂 (꿈속의 넋) 李玉峰 作 近來安否問如何 (근래안부문여하) 요사이 안부를 묻노니 어떠하시나요? 月到紗窓妾恨多 (월도사창첩한다) 달 비친 사창(紗窓)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 若使夢魂行有跡 (약사몽혼행유적) 만일 내 꿈이 다니는 발자국 있다면 門前石路半成砂 (문전석로반성사) 님의 집 문앞 돌길, 반은 모래 되었으리. * ‘님의 집 문앞 돌길, 반은 모래 되었으리.’ 절창이다. - 출전 : 옥봉집(玉峰集) ☑ 이옥봉 李玉峰 (?~?) 선조 때 옥천(沃川) 군수를 지낸 봉(逢)의 서녀(庶女)로 조원(趙瑗)의 소실(小室)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명시종(明詩綜)》 《열조시집(列朝詩集)》 《명원시귀(名媛詩歸)》 등에 작품이 전해졌고 한 권의 시집(詩集)이 있었다고 하나 시 32편이 수록된 《옥봉집(玉峰集).. 2022. 9. 17.
바닥에 대하여 바닥에 대하여 정호승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굳세게 딛고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 시작 노트(정호승) 이 시는 인생의 바닥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 쓰게 된 시입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오면서 한번쯤은 바닥을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바닥은 없다면 한없이 깊고 어두운 심연과 나락 속으로 빠지게 될 것.. 2022. 9. 4.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 보라.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 듯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는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2022. 9. 3.
귀천(歸天) Back to Heaven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 Back to Heaven 천상병 I'll go back to heaven again. Hand in hand with the dew that melts at a touch of the dawning day,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I'll go back to heaven again. With the dusk, together, just we two, at a sign fr.. 2022. 8. 28.
A Psalm of Life 인생찬가 A Psalm of Life - H. W. Longfellow Tell me not, in mournful numbers, Life is but an empty dream! ─ For the soul is dead that slumbers, And things are not what they seem. Life is real! Life is earnest! And the grave is not its goal; Dust thou art, to dust returnest, Was not spoken of the soul. Not enjoyment, and not sorrow, Is our destined end or way; But to act, that each tomorrow Find us farthe.. 2022.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