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치매 예방 효과
국내 연구진이 55~90세 남녀를 대상으로 커피 섭취량과 치매 위험성의 연관성을 조사한 결과
커피를 하루 두 잔 이상 마시는 그룹이 두 잔 미만 마시는 그룹에 비해 치매 위험성이 3분의 1이나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지난주 월요일 신문에서 커피가 치매 위험을 낮춘다는 기사를 읽고 좀 놀랐다.
국내 연구진의 분석 결과로 하루에 커피를 2잔 이상 마신 그룹이
2잔 미만(안 마시거나 1잔)인 그룹에 비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3분의 1이나 낮다는 내용이다.
연구자들은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으로
뇌 조직에 이상 단백질인 아밀로이드베타(Aβ)가 쌓여 있는지 여부를 조사해 발병 위험성을 판단했다.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욱 교수팀과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동영 교수팀은
55~90세 남녀 411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이 가운데 282명은 인지능력이 정상이었고 129명은 약간 손상됐지만 치매로 진단된 사람은 없다.
커피 섭취량에 따라 나누자 하루 두 잔 미만 그룹이 269명, 두 잔 이상 그룹이 142명이었다.
PET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알츠하이머병 발병의 전조로 여겨지는 아밀로이드베타 위험 소견이
하루 두 잔 미만 그룹은 27.1%인 반면 두 잔 이상 그룹은 17.6%로 차이가 꽤 났고
연구자들은 그 결과를 정리해 학술지 ‘중개정신의학’에 발표했다.
사실 커피가 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신경퇴행성질환 위험성을 줄인다는 연구결과가 이미 여러 편 나와있다.
이번 연구는 이런 역학(疫學) 패턴을 뇌 측정 데이터로 뒷받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커피는 치매 예방약?
그럼에도 필자가 이 사실에 약간 충격을 받은 건 최근 강조하고 있는 방향과 반대이기 때문이다.
만성적인 수면장애가 치매를 비롯해 여러 질병의 위험성을 높이는데, 과도한 카페인 섭취가 주범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달 빌 게이츠가 “2019년을 마무리하고 2020년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는 확실한 선택”이라며
연말 연휴에 읽어보라며 추천한 책 다섯 권 가운데 유일한 과학책인
미국의 신경과학자 매슈 워커의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에도 카페인에 대한 경고가 곳곳에 보인다.
‘건강한 수면을 위한 열두 가지 비결’ 가운데 세 번째가 ‘카페인과 니코틴을 피하라’다.
필자 역시 재작년 이 책을 읽으며 깊은 인상을 받았고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특히 40대 이상 남성)은 점심 커피도 자제해야 한다”는 조언을 따라
아침, 점심 하루 두 잔 마시던 커피를 아침 한 잔으로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금연을 시도하는 사람처럼 끊었다가 다시 마시다가를 반복하고 있지만.
지난해 2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연구결과도 숙면이 치매를 예방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깨어있는 동안 뇌세포 밖 공간으로 배출된 아밀로이드베타와 타우(tau)는 잠을 자는 동안 청소된다.
그 결과 단백질이 엉켜 덩어리를 만들지 않게 한다.
타우 단백질 덩어리가 쌓이는 건 Aβ 덩어리보다 더 확실한 알츠하이며병 전조 증상이다.
논문에서는 수면 부족이 청소의 효율을 떨어뜨려 세포 밖 공간에 Aβ와 타우 덩어리가 쌓이게 만든다는 사실을 밝혔다.
커피가 치매를 예방한다는 이번 연구결과를 보면서
문득 ‘수면이 치매에 미치는 영향이 과대평가됐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많이 마시는 그룹은 수면의 양과 질이 떨어지겠지만
그럼에도 커피의 긍정적인 효과가 워낙 커서 이를 상쇄하고도 남아 여전히 치매 위험성이 낮은 게 아닐까.
게다가 논문에서는 한술 더 뜨고 있다.
커피를 많이 마시는 그룹을 다시 하루 2잔과 3잔 이상으로 나눠 분석한 결과
3잔 이상 그룹은 치매 위험성이 절반 이상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루 3잔 이상 마시면 수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더 클 텐데 놀라울 따름이다.
수면장애도 커피 앞에서는 힘을 못 쓴다는 말인가.
만성적인 수면장애는 치매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수면부족이 뇌에 이상 단백질인 아밀로이드베타와 타우 덩어리가 침착되는 걸 촉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규칙적인 수면을 취하는 뇌(왼쪽)에 비해 수면부족인 뇌(오른쪽)에 아밀로이드베타 덩어리(Aβ aggregate)와
타우 덩어리(tau aggregate)가 더 많이 형성돼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사이언스′ 제공
카페인 둔감한 사람이 더 마셔
‘점심 커피를 마셔야 되나...’
한 달 전 낮에 아주 진하게 내린 커피를 무심코 한 잔 다 마셨다가 그날 밤을 새우다시피한 뒤
‘정신 차리고’ 다시 하루 커피 한 잔을 실천하고 있는 필자는 모순된 정보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수면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커피를 한 잔 더 마시는 게 치매 예방을 포함해 전반적인 건강에 더 유익한 건 아닐까.
그런데 문득 필자가 중요한 측면 하나를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카페인 민감성의 개인차다.
카페인 민감성이 섭취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이다.
하루 커피를 두 잔 이상 마시는 그룹은 두 잔 미만인 그룹에 비해 카페인에 둔감할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커피가 수면에 미치는 영향이 단순히 섭취량에 비례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필자만 봐도 카페인에 민감하기 때문에 하루 커피 두 잔도 부담스러워 한 잔으로 줄이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루 두 잔 미만 그룹에서도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 안 마시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카페인에 민감해서 자제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실제 커피 섭취량의 유전성은 0.5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전성(heritability)은 어떤 특성에 유전이 미치는 영향으로 0(전혀 없음)에서 1(100%) 사이다.
성격의 유전성이 0.5 내외이므로 꽤 영향이 있는 셈이다.
한편 커피를 많이 마실수록 유전성이 높아져 한 연구에서는 0.77에 이르렀다.
이는 키의 유전성(0.8)에 맞먹는 수치다.
이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수긍이 가는 결과다.
하루 커피 한두 잔이야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부작용을 거의 못 느끼겠지만
하루 3잔이 넘어가면 못 견디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실제 커피 섭취량과 관련된 유전자를 규명하는 연구가 진행됐고
이렇게 찾은 유전자 대부분이 카페인 민감도와 관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카페인 대사(분해)에 관여하는 유전자 CYP1A2와 AHR의 유전형이 커피 섭취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카페인 섭취량이 수면에 미치는 영향의 평균값을
실생활에서 커피 섭취량이 수면에 미치는 영향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람들은 카페인에 둔감한 편일 것이고
따라서 수면장애를 유발해 치매 위험성을 높이는 부정적 영향력은 생각보다 작을지 모른다.
지난해 학술지 ‘유전자(Genes)’에 실린 논문을 보면 그런 것 같다.
프랑스군생의학연구소 연구자들은 18~60세 프랑스인 1023명을 카페인 섭취량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눴다.
하루 50mg 미만은 낮은 그룹, 50~300mg은 중간 그룹, 300mg 초과는 높은 그룹이다.
참고로 커피 한 잔에는 카페인이 대략 100mg 들어있다.
세 그룹의 평균 수면시간을 조사한 결과
낮은 그룹은 7시간 9분, 중간 그룹은 7시간 2분으로 비슷했고 높은 그룹은 6시간 45분으로 약간 짧았다.
불면증을 호소하는 비율도 낮은 그룹은 7.4%, 중간 그룹은 10.7%, 높은 그룹은 12.5%로 차이가 났다.
논문에서는 이 수치를 토대로 하루에 카페인을 300mg 넘게 섭취하는 건 수면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하루 커피를 3잔 마신다는 건 그날 잠을 포기한다는 걸 의미하는 필자 눈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로 보이지만 생각보다 영향력이 작게 느껴진다.
아쉽게도 국내 연구진의 논문에서는 참가자들의 수면 상태에 대해 알아보지 않았지만
프랑스팀의 연구결과를 보면 적어도 하루 3잔 이상 마시는 그룹은 수면에 다소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치매 위험성이 절반 이하라니 놀랍다.
그렇다고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이 하루 3잔을 마셨다가는
십중팔구 수면장애로 인한 부작용이 워낙 커 커피의 긍정적인 효과를 능가해 치매 위험성을 높일 것이다.
누구는 좋아하는 커피를 마음껏 즐기면서 덤으로 치매 예방 효과까지 보는데, 카페인에 민감한 필자로서는 입맛이 쓰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카페인에 둔감한 사람은 대부분 카페인 대사가 활발하고 따라서 섭취한 카페인이 금방 분해돼 없어진다.
반면 민감한 사람은 그 반대다.
그렇다면 하루 3잔을 마시는 둔감한 사람과 1잔을 마시는 민감한 사람의 평균 혈중 카페인 농도는
3배까지 차이가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커피의 치매 예방 효과가 카페인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커피 섭취량에 미치는 유전의 영향력(유전성)은 0.5 내외로 성격의 유전성과 비슷한 수준이다.
실제 커피의 섭취량과 관련된 유전자가 여럿 밝혀졌는데 카페인을 분해하는 효소 CYP1A2와
이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AHR의 유전형이 큰 영향을 미친다.
AHR은 커피에 들어있는 성분을 생체이물(xenobotic)로 인식해 이를 분해할 CYP1A2의 발현을 촉진한다. ‘인간분자유전학’ 제공
디카페인 커피도 효과가 있을까
2018년 학술지 ‘신경과학의 경계’에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자들은
스타벅스의 인스턴트커피 비아(Via) 3종을 대상으로 치매 예방 효과를 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라이트로스팅(light roasting. 약배전) 커피와 다크로스팅(dark roasting. 강배전) 커피,
다크로스팅 디카페인 커피 추출물이 아밀로이드베타와 타우의 엉킴을 억제하는 정도를 비교했다.
참고로 디카페인 커피는 카페인 대부분이 제거된 상태다.
그 결과 아밀로이드베타 엉킴 억제 효과는 3가지 추출물이 비슷했다.
타우 엉킴 억제 효과의 경우 큰 차이는 아니지만 다크로스팅 커피 추출물이 가장 컸다.
그런데 두 번째는 라이트로스팅 커피가 아니라 다크로스팅 디카페인 커피였다.
커피의 치매 예방 효과는 로스팅을 많이 할수록 커지고 카페인의 기여도는 미미하다는 말이다.
커피에는 카페인 말고도 1000가지가 넘은 화합물이 들어있다.
카페인이 강력한 각성 효과가 있다고 해서 커피가 인체에 미치는 다른 효과도 카페인 때문이라고 볼 수 없는 배경이다.
연구자들은 커피의 여러 성분 가운데 양이 어느 정도 이상 되는 6가지를 선택해
치매 예방 효과(아밀로이드베타와 타우의 엉킴 억제력)을 비교했다.
6가지 성분은 카페인과 클로로겐산, 퀸산, 카페익산, 퀘르세틴, 페닐인단이다.
흥미롭게도 로스팅이 진행됨에 따라 이 성분들의 상대적인 조성이 바뀐다.
커피를 볶으면 클로로겐산 분자가 퀸산과 카페익산으로 분해된다.
그리고 카페익산은 페닐인단으로 바뀐다.
페닐인단은 생두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로스팅을 진행할수록 점점 많아진다.
다크로스팅 커피가 더 쓴 것도 페닐인단의 함량이 높기 때문이다.
아밀로이드베타 엉킴 억제력을 측정한 결과 100μM(마이크로몰농도)에서 카페인과 퀸산은 효과가 없었고
나머지 네 가지 화합물은 99% 수준으로 억제력이 뛰어났다.
타우 엉킴 억제력은 두 가지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퀘르세틴이 24%에 머문 반면 페닐인단은 95%나 됐다.
페닐인단은 농도를 20μM로 낮췄을 때도 34%의 억제력을 보였다.
이 결과는 앞서 커피 추출물의 결과를 잘 설명해 준다.
다크로스팅 디카페인 커피에는 카페인 함량이 훨씬 낮지만 페닐인단은 라이트로스팅 커피 추출물보다 더 많이 들어있다.
따라서 타우 엉킴 억제력이 더 좋게 나온 것이다.
참고로 카페인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클로로겐산도 20% 정도 손실되므로
페닐인단의 함량도 다크로스팅 커피에 비해서 그만큼 적을 것이다.
커피 원두에는 1000가지가 넘는 화합물이 들어있는데, 로스팅 과정에서 조성이 바뀌고 새로운 분자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커피 화합물 6종의 분자구조로 각각 카페인(1), 클로로겐산(2), 퀸산(3), 카페익산(4), 퀘르세틴(5), 페닐인단(6)이다.
로스팅이 진행되면 클로로겐산이 퀸산과 카페익산으로 분해되고 카페익산은 다시 페닐인단으로 바뀐다.
즉 다크로스팅 원두는 클로로겐산 함량이 낮고 페닐인단 함량이 높다. ‘신경과학의 경계’ 제공
“카페인 없는 커피는 매력 없는 여성과 같다.”
지난 2012년 필자는 카페인 함량이 6% 수준인 커피나무 개발 현황을 소개한 글을 쓰면서
브라질 작가 아모로수 리마의 위 문구를 인용했다.
카페인 없는 커피란 디카페인 커피를 의미하고 필자는 다른 관점에서 이 문구에 공감했다.
카페인 추출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향기 성분의 일부를 잃는 디카페인 커피는 매력이 없고
따라서 “향기가 손상된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느니 하루 한 잔이라도 온전한 커피를 마시는 쪽을 택하겠다”고 썼다.
실제 지금까지 필자는 디카페인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
디카페인 커피는 1905년 처음 나왔는데 유기용매로 카페인을 추출했다.
이 방법은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다.
스타벅스의 디카페인 커피 역시 메틸클로라이드(methyl chloride)로 생두의 카페인을 녹여낸다.
생두를 수용액에 8~10시간 담그는 방법으로 카페인을 없애기도 한다.
일명 스위스워터공정(swiss water process)으로 동서식품의 카누 디카페인이 이 방법을 쓰고 있다.
한편 비용은 꽤 들지만 생두에 고압의 초임계유체(기체의 확산성과 액체의 용해성이 있다) 이산화탄소를 흘려보내
카페인을 제거하는 방법도 있다.
이제 커피의 ‘매력’을 운운할 나이는 지났다는 생각이 든 필자는
점심과 저녁에 마실 초임계추출 디카페인 커피 원두를 주문했다.
- 출처 : 동아사이언스 2020.01.07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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