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쥐도 초파리도 잠을 자야만 하는 이유
십 수 년 전 도올 김용옥 교수가 ‘똥철학’을 내세우며 대중 앞에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내던 때가 생각난다.
도올 선생의 똥철학은 ‘완벽한 똥을 눌 수 있도록 오늘 하루를 잘 산다고 하는 것도 엄청난 철학적 주제’이며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하루, 이틀, 사흘 똥만 제대로 못 누어도 그 인간은 무너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인간만이 밑을 닦는 유일한 동물’이라며 완벽한 똥은 ‘딱딱하지도 묽지도 않고
한마디로 밑을 닦을 필요가 없이 깨끗하게 쏘옥 빠져 나가는’ 그런 똥이라고 말한다.
‘기인(奇人)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스펙트럼을 한참 벗어난 도올 선생의 강의에 신선한 충격을 받아 그 뒤에도 자주 봤는데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도 기억이 난다.
도올 선생에 따르면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엔트로피, 즉 무질서도가 증가해 결국 어느 선을 넘으면 죽게 된다는 것.
여기까지는 필자도 떠올릴 만 한 ‘설’이다.
그런데 이어서 도올 선생의 놀라운 통찰력(적어도 필자에겐)이 빛을 발한다.
즉 우리 몸의 엔트로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형적으로 증가하는 게 아니라 하루를 주기로 톱니처럼 변화한다고.
즉 낮에 활동할 때는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밤에 잠을 잘 때는 다시 줄어든다고.
다만 감소하는 양이 앞서 증가량을 완전히 상쇄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완만하게 증가하는 곡선으로 보인다는 것.
‘대단한 구라’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뒤 십 수 년 동안 잠의 과학에 대한 뉴스를 볼 때마다
머릿속에서는 자동적으로 ‘톱니 그래프’가 그려지는 것이었다.
(사진 없음)
인생의 3분의 1이 잠으로 점철될 정도로 인간에게 잠은 중요한 삶의 과정이다.
- 동아일보DB 제공
사실 잠의 기능에 대해서는 과학자들 사이에도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기억을 정리하는 과정이라는 얘기도 있고 대사량을 줄여 환경에 적응하는 행동이라는 설도 있다.
물론 이런 가설들은 서로 배타적인 게 아니라 잠에 그런 측면이 공존하는 것이겠지만
이게 잠이 생기게 된 주요인이라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즉 잠의 기능이 이 정도라면
설사 잠을 안자더라도 기억력이 좀 떨어지는 걸 감수하고 칼로리를 더 섭취하면 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사람은 물론, 쥐 심지어 초파리도 수일 내지 수주 동안 잠을 안 재우면 죽어버린다.
도올 선생의 똥철학 표현을 빌면 ‘사흘 잠만 제대로 못 자도 그 인간은 무너져 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잠의 이런 절박성은 도올 선생의 엔트로피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즉 잠을 못자면 하루 주기 톱니에서 하루하루 쭉쭉 올라가는 그래프로 바뀔 것이고
결국 엔트로피가 어느 선을 넘으면 죽게 되니까 말이다.
☑ 잠 못 자면 죽어
학술지 ‘사이언스’ 10월 18일자에 실린 잠의 새로운 기능에 대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미국 로체스터의대 신경외과 마이켄 네더가드 교수팀은
잠이 깨어있을 때 뇌의 활동으로 만들어진 노폐물을 청소하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따라서 잠을 자지 못하면 뇌에 쓰레기가 쌓여 탈이 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진 없음)
깨어있을 때(왼쪽)는 세포 사이 공간이 좁아 뇌척수액이 주로 뇌 피질 표면에만 머무르지만,
잠잘 때(오른쪽)는 세포 사이 공간이 60%가 늘어나면서 뇌척수액이 침투하고 흐름도 활발해져
노폐물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사이언스 제공
사실 우리 몸이 활동하면 노폐물이 나오기 마련이고 이런 노폐물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바로 림프계다.
그런데 뇌에는 림프계가 깔려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따라서 그동안 과학자들은 뇌의 경우 개별 세포들이 알아서 발생한 노폐물을 처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해 네더가드 교수팀은 뇌에서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이라고 명명한
독자적인 청소 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뇌척수액이 동맥을 둘러싼 교세포를 통해 뇌 세포 사이의 공간(interstitial space)으로 침투해 여기에 쌓여있는,
뇌세포가 배출한 노폐물을 쓸고 가 정맥을 둘러싼 교세포로 들어가 뇌 밖으로 빠져나가 목에서 림프계와 합류한다는 것.
글림프는 교세포(glia)와 림프(lymphatic)의 합성어다.
예전 필자가 프랑스에 출장을 갔을 때 이른 아침에 물차들이 물을 뿌려대며 도로를 청소하는 걸 본적이 있는데
뇌가 청소하는 방식과 비슷한 셈이다.
네더가드 교수는 뇌가 이런 일을 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뇌 활동을 하면서 청소를 병행하기는 어렵다고 추측하고
쥐를 대상으로 깨어있을 때와 잠잘 때 글림프 시스템을 비교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 예상대로 큰 차이를 발견했다.
즉 깨어있을 때는 뇌척수액이 뇌조직 표면에만 머무를 뿐 깊이 침투하지 못했고
뇌에서 세포 사이 공간이 차지하는 부피 비율도 14%에 불과했다.
반면 잠이 들었을 때는 세포 사이 공간이 60%나 늘어나
전체 뇌 부피의 23%를 차지했고 뇌척수액도 조직 깊숙이 침투했다.
또 세포 사이 공간에서 뇌척수액의 흐름을 측정한 결과 깨어있을 때는 잠잘 때의 5%에 불과했다.
결국 잠이 들면 세포 사이 공간이 넓어지고 교세포에서 뇌척수액이 왕성하게 분출되면서
빠른 체액의 흐름으로 베타 아밀로이드 같은 노폐물을 쓸어가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방사성 표지를 한 베타 아밀로이드를 외부에서 넣어준 뒤 배출되는 속도를 비교한 결과
깨어있을 때보다 잠잘 때 2배 더 빨리 배출됨을 확인했다.
네더가드 교수는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해 편두통, 간질 등 뇌질환이 수면 장애와 연관이 있다”며
수면 부족으로 글림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게 주요 원인임을 시사했다.
결국 잠의 근본적인 목적은 뇌 활동에서 나오는 독성 대사부산물을 청소하는 일이라는 말이다.
청소는 결국 정리, 즉 무질서도를 감소시키는 일이다.
잠에 대한 도올 선생의 엔트로피 학설이 큰 틀에서 맞는 얘기일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 출처 : 동아사이언스 2013.10.21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운동, 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가 건강하게 오래 사는 노하우 (0) | 2023.03.20 |
---|---|
‘이 과일’ 먹은 하루, 뇌 활동 촉진된다 (연구) (0) | 2023.03.17 |
단 5초 안에 더 긍정적으로 변하기 (0) | 2023.03.15 |
건강장수 가이드라인 12조 (0) | 2023.03.14 |
윗몸 일으키기가 똥배 없애준다? 잘못된 의학상식 20가지 (1) | 2023.03.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