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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건강

커피는 정말 피부의 적일까

by freewind 삶과사랑 202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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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정말 피부의 적일까

 

영국의 만화가 윌리엄 힐은

1915년 미국 유머 주간지 (Puck)’내 아내와 장모라는 이름의 재미있는 삽화를 발표했다.

얼굴을 그린 건데 이게 보는 사람에 따라 고개 돌린 젊은 여자의 모습이기도 하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노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 중 하나를 본 뒤에는 남이 얘기해 주지 않으면 결코 다른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삽화(맨 오른쪽 그림)는 이제 사람들이 , 이 그림!’ 할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이 그림은 보링의 인물(Boring figure)’로도 불린다.

미국 하버드대의 저명한 실험심리학자 에드윈 보링이 1930,

애매모호한 지각현상의 예로 이 그림을 다룬 논문을 발표하면서 이 그림이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에드윈 보링은 만화가 힐 1915년 잡지에 발표한 그림(오른쪽)을 지각의 애매모호함을 보여주는 예로 논문에 소개했다.

사실 이 그림은 힐의 창작이 아니라 1888년 인쇄된 한 엽서에 나오는 그림으로 작가미상이다.

 

 

심리학자 에드윈 보링은 만화가 힐 1915년 잡지에 발표한 그림(오른쪽)

지각의 애매모호함을 보여주는 예로 논문에 소개했다.

사실 이 그림은 힐의 창작이 아니라 1888년 인쇄된 한 엽서에 나오는 그림으로 작가미상이다.

 

그렇다고 힐이 억울해할 것도 없는 게,

그 자신도 1888년 독일에서 인쇄된 엽서의 그림(맨 왼쪽 그림)을 베낀 것이기 때문이다.

익명의 작가가 그린 이 그림은 1890년 한 기업체에서 써먹기도 했다(가운데 그림).

오히려 지금도 이 그림의 원작자를 힐로 소개하는 문헌이 많다.

 

아무튼 보링은 감각과 지각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로 명성을 쌓았는데,

그가 1942년 펴낸 책 실험심리학 역사에서의 감각과 지각은 이 분야의 명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대중들이 친숙한 또 다른 그림이 실려 있다.

바로 혀지도로 네 가지 기본맛이 각각 혀의 특정 영역에서만 감지된다는 걸 보여주는 그림이다.

단맛은 혀끝, 신맛은 혀양쪽, 쓴맛은 혀뒤, 짠맛은 혀가장자리에서 느껴짐을 묘사한 혀지도는

필자가 중고교 시절 생물교과서에도 소개됐다.

 

보링은 책에서 다비드 해니그라는 독일 과학자가 1901년 발표한 논문을 소개하면서 직접 혀지도까지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오역이 있었다.

즉 원 논문은 혀의 영역에 따라 네 가지 맛을 느끼는 민감도가 약간 차이가 있다는 내용인데

이를 맛 자체를 느끼는 차이가 있다고 왜곡한 것.

저명한 실험심리학자의 주장은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고 그 뒤 혀지도는 과학상식으로 굳어졌다.

1974년 버지니아 콜링스라는 과학자가 실험을 통해 혀지도가 사실이 아니라는 결과를 밝히기도 했지만

믿음을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2000년대 들어 기본맛을 감지하는 미각수용체가 속속 발견되고

혀에서 맛이 어떻게 지각되는가가 분자차원에서 규명되면서 마침내 혀지도의 허상이 밝혀졌다.

설탕이나 소금 알갱이를 조금 집어 혀 부위별로 떨어뜨려보면 누구나 반증할 수 있는 명백한 오류가

60여 년 동안이나 살아남아 과학교과서에까지 버젓이 실렸다는 건 지금 생각해봐도 미스터리한 일이다.

 

 

커피 탈수 실험 논문 딱 두 편

 

그런데 최근 학술지 플로스 원에 혀지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과학상식 내지는 건강상식으로 알고 있던 내용이

알고 보니 별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바로 커피와 탈수에 관한 이야기다.

 

날씨가 건조해져 피부가 푸석푸석해지는 계절이 오면(사실상 여름을 제외한 모든 시기),

신문이나 방송에는 피부를 촉촉하게 유지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조언이 나온다.

그런데 여기에서 물을 많이 마시라는 처방과 함께 거의 빠지지 않는 내용이

탈수를 촉진하는 커피 같은 카페인 음료를 피하고 대신 카모마일 같은 허브차를 마시라는 조언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로서는 참 아쉬운 대목이다.

실제 필자 주변에도 피부를 위해 좋아하는 커피를 거의 안 마신다는 여성이 있다

(그래서인지 피부가 촉촉해 보이기는 한다!).

 

커피가 피부의 적이라는 이 오래된 믿음은 카페인의 이뇨작용에서 비롯한다.

이뇨작용은 한마디로 들어온 수분보다 빠져 나가는 수분이 더 많게 하는 작용이다.

그냥 물을 마셔도 체액이 희석되기 때문에

이온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여분의 수분이 신장에서 걸러져 소변으로 배출된다.

그런데 카페인이 들어있는 음료일 경우 이 밸런스에 영향을 미쳐 신장이 과도하게 작용해 체액이 부족해진다는 것.

물론 이런 효과가 누적되는 건 아니지만(그랬다가는 며칠 안 가 미라가 될 것이므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몸은 수분 밸런스가 깨져 늘 체액이 부족한 상태이고 따라서 피부가 촉촉해지기는 어렵다는 것.

 

참고로 미국 텍사스대의 디 언그로브 실버톤 교수가 쓴 대학교재 생리학(Human Physiology)’를 보면

우리 몸에서 수분이 차지하는 비율은 여성이 50%, 남성이 60%로 나온다.

다소 뜻밖인데 여성은 체지방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수분의 분포를 보면 세포내액이 3분의 2, 세포외액이 3분의 1이다.

세포외액, 즉 세포 밖에 있는 물 가운데 4분의 3이 간질액(세포 사이 공간을 채우는 체액)이고

4분의 1이 혈장(혈액에서 혈구를 뺀 부분)이다.

즉 몸무게 60킬로그램인 남성(또는 72킬로그램인 여성)은 수분이 36리터로 이 가운데 3리터가 혈장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신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혈액 내 물과 이온 농도의 항상성을 조절하는 것으로,

매일 180리터의 혈장이 신장에서 걸러진다.

이 가운데 99% 이상이 혈관으로 재흡수되고 1.5리터가 오줌으로 배출된다.

전체 혈장이 3리터이므로 하루에 60회나 순환하는 셈이다.

만일 재흡수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혈장은 24분 만에 바닥이 날 것이다.

 

신장에서 여과된 액의 재흡수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나트륨 이온(Na+)의 재흡수다.

즉 용질인 나트륨 이온이 신장의 세뇨관 상피세포를 통해

다시 세포외액으로 들어오면서 삼투압의 작용으로 물도 딸려 들어오는 것.

그런데 카페인은 나트륨 이온의 재흡수를 억제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물의 재흡수도 막게 되고

따라서 오줌의 양이 많아지면서 체액은 줄어들게 된다는 것.

실제로 커피를 안 먹던 사람이 커피를 마시거나 평소보다 과도하게 마실 경우 일시적으로 탈수 작용이 나타난다.

 

이처럼 커피와 탈수의 관계가 인과적으로 명확해 보이는데

어떻게 커피가 탈수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게 된 것일까.

사실 필자는 이번 논문의 결과 자체보다는 커피가 탈수를 일으킨다는 주장이 어떻게 시작됐는지가 더 궁금했다.

카페인의 이뇨 작용에 대한 첫 논문은 19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저자들은 카페인 섭취가 급성 이뇨를 일으키지만

규칙적으로 섭취할 경우 내성이 생겨 이뇨 효과가 없어진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카페인 섭취를 끊고 4일이 지나면 내성도 사라진다고 보고했다.

그 뒤 10여 건의 관련 연구가 보고됐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흥미로운 건 실제 커피의 이뇨 작용에 대한 논문은 두 건 밖에 없었고

대부분은 카페인 정이나 캡슐을 복용했을 때 결과를 분석한 것이다.

 

1997년 발표된 논문은 5일간 커피를 마시지 않은 피험자에게 커피 6(카페인 624밀리그램)을 마시게 한 뒤

24시간 동안 오줌량과 몸의 수분량 변화를 측정한 결과 오줌량이 41% 늘었고 수분량이 2.7% 줄었다는 내용이다.

커피가 탈수를 일으킴을 입증한 결과다. 2000년 발표된 논문은

하루 두 잔 커피를 마신 피험자와 물을 마신 피험자를 비교했을 때 차이가 없었다는 내용이지만 데이터가 좀 부실했다.

 

영국 버밍엄대의 연구자들은 커피와 체내 수분 유지의 관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음에도 이처럼 실제 연구된 사례가

거의 없다는 뜻밖의 사실에 놀라 하루 두 세 잔의 커피 섭취가 탈수를 정말 일으키는가에 대한 정밀한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자들은 평소 하루에 커피 3~6잔을 마시는 비흡연자 남성(여성은 생리주기가 미치는 영향 때문에 배제) 52명을

대상으로 정교한 실험에 들어갔다.

즉 두 차례에 걸쳐 한 번은 3일 동안 하루에 몸무게 1킬로그램당 카페인 4밀리그램의 커피(아메리카노 두 세 잔 분량)

네 차례에 나눠 각각 200밀리리터의 물에 타 마시게 했다.

비교 실험으로는 역시 3일 동안 커피 대신 물을 마시게 했다. 이 차이를 제외한 다른 영양분의 섭취량은 같게 유지했다.

 

 

 

3일간의 커피와 물 섭취 실험을 전후한 몸의 전체 수분량 데이터로 커피를 마셨을 때(짙은 회색)와 물을 마셨을 때(옅은 회색)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 플로스원 제공

 

 

오줌량이나 몸의 수분량 변화 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 두 실험의 차이는 없었다.

즉 하루 두 세 잔의 커피는 우리 몸의 수분 밸런스 유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

다만 오줌에 포함된 나트륨 이온의 양은 커피를 마셨을 때가 10% 정도 더 높았다.

그럼에도 배출된 오줌의 양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인체의 수분 밸런스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유지되므로

이 정도는 다른 쪽에서 충분히 상쇄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참고로 어떤 의사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면

물 두 잔을 마셔 수분을 보충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한다(그렇다면 에스프레소를 마실 경우 물 세잔을 들이켜야 할까?).

설사 며칠 만에 커피를 마셨거나 너무 많이 마셔 이뇨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라 하더라도 이 조언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어차피 체내에 카페인이 있을 동안에는 이뇨 작용이 일어나므로 괜히 화장실만 자주 들락거리게 될 것이 때문이다.

카페인의 반감기가 5시간 내외이므로 그냥 기다리는 게 현명할 것이다.

물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셔야겠지만.

 

 

- 출처 : 동아사이언스 2014.01.13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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