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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건강

뇌는 이런 운동을 원한다

by freewind 삶과사랑 2022.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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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이런 운동을 원한다

 

인간 생리학은 매일 상당한 수준의 유산소 활동을 하는 맥락에서 진화했고

따라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하는 건 진화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다.

 

- 데이비드 라이크렌 & 진 알렉산더

 

 

2018 러시아 월드컵 지역 예선을 지켜보며

2002 한일 월드컵 무렵이 우리나라 축구의 전성기였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그나저나 이번에 본선에 오를 수 있을까?).

당시 활약한 박지성, 안정환, 이영표, 차두리 선두의 멋진 플레이가 그립다.

이들은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도 다른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특히 이영표 선수는 지난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예언자경지의 해설을 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달 한 TV 프로그램에서 이영표 선수가 강연자로 나섰다.

스포츠 복지라는 낯선 개념을 주제로 한 강연이었는데 꽤 흥미로웠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노인 의료 비용도 급증해 머지않아 우리나라 건강보험재정이 파탄 날 지경이라고 한다.

결국 의료복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이다.

 

의료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길을 찾아야하고

그게 바로 스포츠 복지라고 이영표 선수는 주장한다.

즉 사람들이 운동을 일상화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건강한 노년을 보내면 당사자의 삶의 질이 높아질 뿐 아니라

국가 재정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캐나다를 비롯한 선진국들의 스포츠 복지 현황을 소개했다.

 

최근 이영표 선수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스포츠복지를 주제로 흥미로운 강연을 했다. - KBS 제공

 

 

강연 가운데 우리나라가 (특히 노약자들에게) 바깥에서 운동하기에 여건이 안 좋은 곳이라는 대목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겨울과 여름은 추위와 더위 때문에, 봄은 미세먼지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캐나다의 한 스포츠센터를 소개하고 있는데

건물이 꽤 큰지 창가를 따라 트랙을 깔아 달리기까지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이영표 선수가 직접 달리며 우리나라에도 이런 시설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부러웠다.

 

평소 앞산 산책 정도의 운동을 하는 필자는

찜통 더위로 녹초가 되는 칠팔월에는 이마저도 안 하는 운동 휴식기를 보내곤 했는데

이럴 땐 실내 운동이라도 해야 한다는 이영표 선수의 강연을 들으며 내일 바로 헬스클럽 에 등록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가 이번 달 들어 비가 몇 번 오고난 뒤 고온다습한 날씨가 시작되자

결국 운동 휴식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지난 주말 새로운 관점에서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논문을 읽으며 다시 정신을 차렸다.

오전 중으로 이 논문을 소개하는 글을 마무리하고 오후에 꼭 헬스클럽에 등록해 하루 30분이라도 운동을 해야겠다.

 

 

안 쓰면 필요 없다고 판단

 

미국 애리조나대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라이크렌 교수와 뇌과학자 진 알렉산더 교수는

학술지 신경과학 경향’ 7월호에 운동과 뇌 건강의 관계를 진화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논문을 실었다.

 

2000년대 들어 운동이 인지력을 높여주고

알츠하이머병 같은 신경퇴행성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5년 나이 든 생쥐에게 운동을 시키자 학습능력이 향상됐는데 뇌를 조사해보니

해마에서 신경 생성이 활발하게 일어났음이 확인됐다.

해마는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으로 성체에서도 신경 생성,

즉 뉴런이 새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1990년대 밝혀졌는데 운동이 이를 더 활발하게 한다는 것이다.

즉 운동이 뉴런의 수를 많이 늘려 그 결과 똑똑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운동과 뇌의 연결을 설명하는 명쾌한 메커니즘이 나와 있지 않다.

아울러 운동이 뇌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실험 결과도 들쭉날쭉하다. 회춘이라고 부를 정도로

극적인 효과를 보이는가 하면 운동을 하지 않은 대조군과 유의적인 차이가 없는 경우도 있다.

 

라이크렌과 알렉산더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운동, 즉 신체 활동과 뇌의 관계를 진화의 관점에서 통찰했고

그 결과 적응 능력 모형(adaptive capacity model)’이라고 부르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적응 능력이란 우리 몸의 능력이 필요(자극)에 맞춰 유연성을 보이는 현상으로

에너지최소화전략(energy-minimizing strategy)에서 비롯된다.

 

쉽게 말해 자꾸 쓰거나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필요하다고 판단해 능력을 키우고

안 쓰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능력을 줄인다는 말이다.

즉 우리 몸은 꼭 필요한 곳에만 에너지를 쓰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늘 정적인 생활을 하면, 즉 신체 활동이라는 자극이 없으면 몸에 많은 피를 공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심혈관계는 말단의 혈관을 줄이고 혈관의 탄력도 떨어진다.

그 결과 나이가 들수록 심혈관계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진다.

운동을 안 하면 근육량이 줄어들고 뼈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그런데 뇌는 이런 경향에 더 취약할 수 있다.

뇌의 무게는 몸무게의 2%에 불과하지만 에너지 소모량은 전체 에너지 소모량의 20%(쉬고 있을 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머리를 쓸 일이 없으면 뇌가 정말로 쪼그라든다(즉 신경생성이 줄어들고 시냅스가 끊어진다).

 

사람은 뇌가 유난히 큰 동물이지만 그렇다고 우리 뇌가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풀라고 진화한 건 아니다.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먹이를 찾고 짝을 만나 자손을 보는 과정에서

필요한 여러 행동을 잘 해낼 수 있게 진화한 것뿐이다(다만 몸이 약하므로 다른 동물들보다 머리를 더 써야한다).

 

적응 능력 모형에 따르면 일상에서 이런 행동을 계속하면 뇌가 유지되지만 하지 않으면 퇴화된다.

알다시피 현대인들 다수는 수렵채취인 시절 인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 활동이 적고

따라서 뇌가 일찌감치 쪼그라들 가능성이 높다.

실제 21세기 들어 지구촌 차원에서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신경퇴행성질환 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는 현상은

이런 가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인류는 대략 20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등장한 이래 오랫동안 수렵채취 생활을 유지해왔다.

따라서 몇몇 과학자들은 수렵채취 활동과 비슷한 운동을 꾸준히 해야 몸과 뇌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오늘날에도 수렵채취인으로 살고 있는 탄자니아의 하드자 사람들.

뒷모습만 봐도 대사질환이나 신경퇴행성질환과는 거리가 멀 것 같다.

실제 이들이 심혈관계질환에 걸리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 Brian Wood 제공

 

 

수렵채취인들이 우리처럼 따로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먹고 살기 위해 하루에 몇 시간씩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고 채집을 하는 신체 활동을 하는 게 전부인데

그렇다면 이런 일상의 활동이 각종 기구와 스포츠과학이 뒷받침하는 운동보다도 뇌 건강에 더 좋다는 말인가.

라이크렌과 알렉산더에 따르면 당연히 그렇다’.

 

러닝머신 위를 달리거나 바벨을 드는 것도 물론 좋은 운동이지만 여기에는 목적의식이 없다.

그러나 사냥이나 채집 활동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동시에 끊임없이 머리를 굴려야 하는 작업이다.

때로는 재빨리, 때로는 조심스레 이동해야 하고 지형지물을 익혀야 하고 과거의 기억을 되살릴 필요도 있다.

한마디로 머리를 쓰지 않으면 큰 소득을 기대할 수 없는 활동이다.

 

운동이 인지력 향상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는 반면 없다는 연구결과도 있는 것도

실험에 적용한 운동이 머리를 쓰게 하는 건지 아닌지 여부를 보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예를 들어 3개월 동안 고정된 자전거를 타는 운동을 했을 때 인지력에 미치는 영향을 본 결과

그냥 자전거를 탄 사람들보다 가상투어를 체험한 그룹이 훨씬 효과가 컸다.

최근에는 자전거를 타며 비디오게임을 할 경우 가상투어를 할 때보다도 더 효과가 크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러닝머신이나 고정된 사이클을 이용한 지루한(인지력을 요구하지 않는) 운동은 뇌 기능 향상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운동 직후 머리를 쓰는 활동을 하면 인지력 향상에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 GIB 제공

 

 

한편 적응 능력 모형은 운동 강도가 뇌에 미치는 영향도 잘 설명한다.

즉 운동의 강도가 클수록 인지력이 향상에 더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적당한 강도의 운동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6주 동안 러닝머신을 달리는 운동을 할 때 적당한 속도가 빠른 속도보다 인지력 향상 효과가 더 컸다.

이는 수렵채취 활동의 대부분이 산소 소모량이 최대치의 40~85%인 적당한 강도의 운동에 해당한다는 점과

일맥상통하는 결과다.

 

 

근육에서 뇌 기능 올리는 물질 분비

 

인지력을 높이려면 굳이 운동을 안 해도 바둑을 두든 고스톱을 치든 어쨌든 머리를 쓰면 되는 것 아닌가.’

이렇게 반문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물론 멍하니 앉아 있는 것보다는 이런 활동이 당연히 인지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운동과 결합됐을 때보다는 효과가 덜하다.

운동을 하면 근육에서 마이오카인(myokine)이 분비되고 이게 혈관을 타고 뇌로 들어가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 같은 뉴로트로핀(neurotrophin)과 성장인자를 만드는 유전자의 발현을 촉진해

그 결과 신경 생성과 시냅스 형성 같은 인지력 향상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즉 머리를 안 쓰는 운동을 하거나 몸을 움직이지 않는 정신 활동을 하는 게

나름 인지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만 이 둘을 결합하면 훨씬 큰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미래에는 가상현실로 사냥을 하거나 채집을 하는 상황을 설정한 상태에서

러닝머신 위를 걷거나 달리는 운동이 널리 퍼질지도 모르겠다.

 

당장 이런 환경이 안 된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진화는 약간 허술한 면도 있어서 뇌는 운동과 정신 활동이 가까운 시간 간격 안에서 일어나면

이 둘이 서로 연결된 것으로 착각해수렵채취 활동을 할 때처럼 인지력이 향상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헬스클럽을 다녀와서 바로 낱말퀴즈를 풀면 된다는 말이다.

이런 효과는 두 활동의 간격이 수 시간을 넘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적응능력모형에 따르면 수렵채취 활동처럼 적당한 운동 강도와 머리를 쓰는 활동이 몸과 뇌의 건강에 가장 좋다.

하루 반나절 경치 좋은 길을 걷는 게 이런 운동 아닐까. 제주 올레길 전경. - Republic of Korea(F) 제공

 

 

한편 운동의 강도와는 달리 유형은 인지력 향상에 큰 변수가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걷거나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일정 시간 이상 적당한 강도로만 운동을 하면 다들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제주 올레길이 유명해진 뒤 각 지자체마다 걷기 좋은 길들을 많이 만들어놓았다.

이런 길을 찾아가 반나절 걷는 게 수렵채취 활동과 가장 비슷한 운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올 가을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가까운 곳부터 걷기 좋은 길들을 섭렵해야겠다

(인지력 향상을 위해서는 낯선 환경에 놓이는 게 중요하므로).

 

 

- 출처 : 동아사이언스         2017.07.18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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