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1日1食해야 하나
짐승은 목이 마르지 않으면 물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
- 출처 미상
18세기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비롯한
불멸의 철학서를 써 ‘철학=칸트’라는 인상을 남겼지만 기이한 습관으로도 유명하다.
즉 칸트는 평생 고향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지 않았고
매일 정해진 시간(오후 5시)에 어김없이 산책을 나가 동네 사람들은 칸트를 보고 시계를 맞췄다고 한다.
칸트의 또 하나 기이한 습관은 하루에 한 끼만 먹었다는 것.
즉 산책을 다녀와 먹는 저녁이 그의 유일한 식사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차 한 잔을 마시고 오전 7시에 강의를 했고
그 뒤 산책을 나갈 때까지 연구와 집필에 몰두했다.
이런 극도로 절제된 생활(칸트는 결혼도 안 했다) 덕분인지
키가 160cm도 안 되고 허약체질이었던 칸트는 80세까지 살아 당시로는 꽤 장수했다.
‘1日1食’ 열풍 상륙
그런데 이제는 우리 보통 사람들도 칸트의 생활습관을 따라야하는 것일까.
최근 번역출간된 일본 의사 나구모 요시노리의 책 ‘1일1식’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 종합 5위(교보문고)에 올랐다.
1955년 생으로 올해 57세인 나구모 박사는
책 속표지의 프로필 사진이 최근 것이 맞다면 외모로는 40살 전후로 보이는 훈남이다.
그가 이렇게 젊게 보이는 비결이 바로 10년 동안 실천하고 있는 하루 한 끼 먹기 덕분이란다.
이 책은 자신의 경험을 최신 과학 연구 결과와 결합해 ‘극단적인 소식(小食)’ (과학 용어로는 ‘칼로리 제한’)의 효용을
설파하고 있다.
일본에서 50만 권 넘게 팔리며 ‘나구모식 건강법’ 열풍이 풀고 있다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일단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책도 꽤 재미있어서 술술 읽히고 유익한 내용도 많다.
즉 17만 년 역사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늘 굶주림에 시달렸고 몸이 여기에 적응했는데
최근 수십 년 동안 영양과잉 환경을 만나면서 오히려 건강을 잃게 됐다는 것. 사실 이제는 익숙한 이야기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나구모 박사는 처음에 ‘1즙1채(一汁一菜)’ 식사법을 제안한다.
즉 한 끼에 밥과 함께 국 한 그릇, 반찬 한 그릇으로 단출하게 해 식사량을 줄이라는 것.
여기까지는 역시 상식적인 해결책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루에 한 끼만 먹으라는 ‘1일1식’ 제안이 나온다.
즉 때가 됐다고 식사를 하는 건 잘못된 습관으로 밥은 배가 정말 고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 먹어야 한다고.
나구모 박사는 “자연계의… 모든 동물들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며
“그리고 모든 동물은 목이 마르지 않으면 물도 마시지 않는다”라고 쓰고 있다.
사람도 원래는 이랬을 것이기 때문에 그때로 돌아가자는 것.
나구모 박사 역시 칸트처럼 저녁만 먹는다고 한다.
혹 아침이나 점심 때 정 허기를 참기 어려우면 과일 하나를 먹거나 달지 않은 쿠키 한두 개를 먹으면 된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식사법 덕분에 나구모 박사는
40대 중반 77kg의 과체중(키 173cm)에서 지금은 62kg에 외모는 40살 전후, 혈관나이는 26살이라고 한다!
자신은 큰 효과를 거두었지만 의사로서 ‘다른 사람에게 권해도 될까’라고 망설이던 그는
노화와 관련된 연구결과를 보고 ‘권해도 좋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그 연구가 바로 ‘연명(장수) 유전자’ 발견과 여러 동물실험을 통해 식사량을 40% 정도 줄이면
수명이 1.5배 정도 늘어난다는 사실이라고.
1999년 장수 유전자 발견
나구모 박사가 말하는 장수 유전자는 ‘시르투인(sirtuin)’이라고 부르는 유전자 그룹에 속하는데 1999년 처음 발견됐다.
미국 MIT의 레오나르드 가렌티 교수팀은 칼로리를 제한한 경우
생물이 더 오래 산다는 경험적인 관찰(1935년 쥐에서 처음 발견)을 통해 여기에 관여하는 유전자 사냥에 뛰어들었고
1999년 마침내 대학원생 맷 캐벌린이 효모에서 SIR2 유전자가 바로 장수 유전자임을 밝혔다.
SIR2가 없으면 수명이 짧아졌고 많이 발현시키면 길어졌다는 것.
그 뒤 예쁜꼬마선충, 초파리, 쥐, 사람에서도 SIR2에 해당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포유류의 경우 SIRT1으로 불리며 시르투인 유전자 7개 가운데 하나다.
칼로리 제한, 즉 먹을 게 부족해지면 세포 안 대사경로에 변화가 생기면서 장수 유전자가 활성화된다.
SIR2 유전자가 발현돼 만들어진 단백질은 히스톤탈아세틸화효소로 실패처럼 DNA이중나선이 감기는
히스톤의 아세틸기를 떼어냄으로써 DNA이중나선이 더 촘촘히 감기게 해 유전자 발현이 잘 안 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가설에 따르면 SIR2가 억제하는 건 노화촉진 유전자들로 그 결과 노화가 늦춰진다는 것.
세포내 분자 메커니즘까지 밝혀지면서 힘을 얻은 칼로리 제한 이론은 이제 단 한 가지 실험만 남겨놓고 있었다.
즉 사람에서도 칼로리 제한이 수명연장으로 이어질까에 대한 확인이다.
사실 칼로리 제한은 식사량을 3분의 1이나 줄이는 것이므로 상당히 과격한 방법이다.
그런데 지난 2009년 기다리고 기다리던 결과가 나왔다.
현실적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평생에 걸쳐 실험을 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영장류인 붉은털원숭이에 대한 20년에 걸친 추적연구에 대한 결과가 나온 것.
미국 위스콘신국립영장류연구소(WNPRC)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칼로리를 30% 낮춘 원숭이 집단이 수명이 길었을 뿐 아니라
암, 심장질환, 당뇨병 같은 질환에 걸릴 가능성도 낮았다고 보고했다.
이런 결과들을 보고 나구모 박사는 확신을 갖고 1일1식이라는 과격한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스승을 버려야 했던 제자들
1999년 등장해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점차 도그마가 돼 가고 있던 장수 유전자와 칼로리 제한 이론의 이면에서는
그러나 균열이 조금씩 퍼져나가고 있었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잠시 바이오벤처에 있다가 워싱턴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던
캐벌린(1999년 SIR2가 장수 유전자임을 밝힌 논문의 제1저자)은
어느 날 대학원 시절 선배였던 브리언 케네디를 만나 옛 추억을 회상하다가 SIR2 실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들은 문득 둘 다 당시 실험 결과에 대해 내심 찜찜해 하고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SIR2가 수명에 관한 모든 걸 설명해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사실 효모 균주에 따라 수명연장에 칼로리 제한은 효과가 있지만 SIR2는 효과가 없는 경우도 있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어떤 균주는 SIR2 유전자가 없어도 칼로리 제한으로 오래 살았다.
결국 이들은 2004년 SIR2 과발현과 칼로리 제한은 서로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가렌티 교수는 이들의 논문에 노발대발했지만 2007년 SIRT1 유전자가 많이 발현되게 조작한 쥐가
노년의 건강은 더 나았지만 수명이 늘어나지 않았다는 자신의 연구팀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결국 2008년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는
‘중년의 위기 맞은 노화이론(A mid-life crisis for aging theory)’이라는 제목의 리뷰논문이 실리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난해 ‘네이처’에 선충과 초파리에서도 SIR2 과발현이 수명연장 효과가 없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이는 효과가 있다는 2001년(선충)과 2004년(초파리) 연구결과를 정면으로 뒤집는 내용이다.
실험 설계의 중요성
(사진 없음)
왼쪽 사진은 2009년 발표된 위스콘신국립영장류연구소 실험에 참여한 붉은털원숭이들의 모습이다. 대조군과 칼로리 제한군의 전형적인 원숭이 모습으로 나이는 28살로 같지만 칼로리 제한군 원숭이(왼쪽)가 대조군 원숭이(오른쪽)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인다. 붉은털원숭이의 평균수명은 27살이다. (제공 Jeff Miller). 하지만 오른쪽 사진은 지난 9월 발표된 국립노화연구소 실험에 참여한 붉은털원숭이들로, 칼로리 제한군 원숭이(왼쪽)와 대조군 원숭이(오른쪽)의 모습에서 노화 차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둘 다 27살이다. - NIA 제공
사실 장수 유전자에 관련된 논란은 임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칼로리 제한으로 수명이 늘어나는 게 중요하지 여기에 SIRT1 유전자가 관여하는지 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칼로리 제한조차도 수명 연장과 관계가 없음을 시사하는 연구결과가 ‘네이처’ 9월 13일자에 실렸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노화연구소(NIA)는 1987년부터 시작한 붉은털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칼로리 제한 실험(30% 줄임)의 결과를 발표했는데 수명연장 효과가 없었다고 밝혔다.
같은 종을 대상으로 비슷한 기간 동안 실험을 진행한 위스콘신국립영장류연구소의 결과와 모순되는 내용이다.
최고의 시설에서 76마리(WNPRC)와 86마리(NIA)나 되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숫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어떻게 이처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미국 텍사스대의 노화연구자인 스티븐 오스태드 박사는 같은 날짜 ‘네이처’에 실린 해설에서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먼저 식단이다.
WNPRC는 엄격한 통제를 위해 각 영양소가 정확히 계량된 사료를 먹었는데 설탕의 비율이 28.5%나 됐다.
반면 NIA의 경우 다소 편차가 있더라도 자연식을 택했고 설탕 비율은 3.9%에 불과했다.
이런 식단 차이는 WNPRC의 대조군(정량을 먹은 원숭이 집단)에서 당뇨병 발병률이 40%가 넘는 반면
NIA의 대조군에서는 12.5%에 불과했다.
또 다른 중요한 차이점은 WNPRC의 대조군은 식사량에 통제를 받지 않은 반면 NIA의 대조군은
정말 정량만을 먹게 통제를 받았다는 데 있다.
그 결과 같은 대조군임에도 NIA의 원숭이들이 더 날씬했다.
두 실험을 사람들의 식습관에 적용해보면 WNPRC의 대조군은 청량음료나 과자에서 설탕을 지나치게 먹고 있는
과체중인 사람에 해당하고 NIA의 대조군은 나구모 박사의 ‘1즙1채’에 가까운 담백한 식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칼로리 제한, 즉 ‘1일1식’을 실천하는 사람은 정크푸드에 탐닉하는 사람보다는 더 건강하게 오래 살겠지만
‘1즙1채’인 사람과는 별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나구모 박사의 주장은 과격한 게 사실이지만 책에서는 나름대로 자제하는 모습이 보인다.
즉 성장기인 어린이나 청소년, 가임기의 여성에게는 1일1식은 위험하다며 1즙1채를 추천했고,
성인 남성과 폐경기가 지난 여성도 ‘1일1식(또는 1즙1채)’라는 표현으로 선택의 폭을 줬다.
그런데 한국어판이 나오면서 책 제목도 더 노골적이 됐고
(원제는 ‘空腹が人を健康にする’로 직역하면 ‘공복이 사람을 건강하게 한다’이다)
특히 띠지에는 ‘하루 세 끼 식사는 당신 몸에 독이다!’라는 섬뜩한 표현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 가운데 1일1식을 시도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실패하고(매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를 기다려 밥을 먹는다는 것도 고역일 것이다)
다시 1일3식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렇다고 매끼 밥상을 받아놓고 ‘내 몸에 독인데…’라는 심정으로 밥을 먹는다면 그게 정말 독으로 작용할 것이다.
1즙1채, 즉 적당량을 먹는 수준의 식습관으로도 건강과 장수에 충분하다는 게 최근 연구의 결론임을 기억하길 바란다.
- 출처 : 동아사이언스 2013.04.25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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