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애송시

낯선 곳

by freewind 삶과사랑 2022. 10. 2.
728x90

낯선 곳

 

고은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 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아기가 만들어낸 말의 새로움으로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그리하여

할머니조차

새로움이 되는 곳

그 낯선 곳으로

 

떠나라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빈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

 

 

 

 

그는 숲이다.

나무 한 그루 들풀 한 포기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그에게는 모여서 큰 숲이 된다.

나는 그에게서 영원한 청년을 본다.

끝없이 낯선 곳을 찾아 떠나는 유목민 청년. 크고 거대한 곳으로가 아닌 날마다의 일상으로부터,

낡은 반복으로부터, 편안한 정주처로부터 과감히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이 그의 여정이다.

아기가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부르는 말의 새로움,

그리하여 할머니조차 새로움이 되게 하는 재생과 탄생의 낯선 곳을 향한 영원한 노마디즘.

그것이 그를 숲이고 강이고 마침내 바다이게 하는 것일 것이다.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 출처 : 시가 있는 아침, 중앙일보 2013.01.15

 

'애송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담  (0) 2022.10.09
Youth - 청춘  (1) 2022.10.08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0) 2022.10.01
인생 - 로버트 브라우닝  (0) 2022.09.24
對酒 (술을 대하고)  (0) 2022.09.1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