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락일고(伯樂一顧)
☑ 요약
명마(名馬)도 백락(伯樂)을 만나야 세상에 알려진다는 뜻으로,
재능 있는 사람도 그 재주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야 빛을 발한다는 말.
☑ 출전 : 전국책(戰國策)
주(周)나라 때 어느 날 말 장수가 백락에게 찾아와 자기에게 훌륭한 말 한 필이 있어 이를 팔려고 시장에 내놓았지만
사흘이 지나도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으니 사례는 충분히 하겠으니 감정해 달라고 신신당부하였다.
백락은 시장에 가서 말의 주위를 여러 차례 돌면서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다리, 허리, 엉덩이, 목덜미, 털의 색깔 등을 감탄하는 눈길로 그냥 쳐다보기만 하였다.
그리고나서 아무 말 없이 갔다가는 다시 돌아와서 세상에 이런 명마는 처음 본다는 듯이 또 보곤 하였다.
당시 최고의 말 감정가가 찬찬히 살피는 것을 보자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구하기 힘든 준마(駿馬)라고 여겨 앞다투어 서로 사려고 하여 말의 값은 순식간에 껑충 뛰었다.
결국 이 준마는 백락이 있기 때문에 그 진가가 나타난 것이었다.
또 백락의 친구 가운데 역시 말에 대해 안목이 있는 구방고(九方皐)가 있었다.
진(秦)나라의 목공(穆公)이 구방고에게 준마 한 필을 구해 오라고 하였다.
얼마 후 명마 한 필을 목공에게 데리고 왔는데 목공은 평범한 말이라고 생각하여 구방고를 내쫓으려고 하였지만
백락이 이를 말리고 “정말 훌륭한 말입니다”라고 하였다.
목공이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명마 중의 명마였다.
이는 여포(呂布)의 적토마(赤兎馬)처럼 아무리 뛰어난 준마가 있어도 이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야만
그 능력이 발휘된다는 말이자 지혜로운 신하가 있어도
이를 알아보는 현명한 군주가 있어야만 그 재능이 발휘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제갈량(諸葛亮)도 유비를 만나고 나서 그의 지혜가 발휘된 것이었다.
백락의 본명은 손양(孫陽)이며 주나라 사람이다.
원래 백락은 전설에 나오는 천마(天馬)를 주관하는 별자리인데
손양이 말에 대한 지식이 워낙 탁월하여 그렇게 불린 것이다.
난세일수록 아부만 하는 신하가 아닌,
영웅호걸과 지혜로운 신하를 알아보는 명군(名君)의 혜안(慧眼)이 필요하다.
<다른 해설>
伯樂一顧(백락일고)
☑ 意義
‘백락의 한번 돌아봄’이라는 말로,
명마도 백락을 만나야 세상에 알려지듯이
현명한 사람도 그를 알아주는 자를 만나야 출세할 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현자에게 능력을 인정받음’을 뜻하기도 함.
☑ 解義
화씨벽(和氏璧)은 중국에서 국보 중의 국보로 여겨 왔던 구슬이다.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주울 때는 평범한 바윗돌 같았다.
이 때문에 王에게 바쳤다가 미치광이 취급을 받고 두 발을 잘려야 했다.
세상에 천리마(千里馬)는 꽤 있었다.
주목왕(周穆王)의 팔준마(八駿馬)나 항우(項羽)의 오추마(烏騶馬), 여포(呂布)의 적토마(赤兎馬)가 그것이다.
그러나 千里馬는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기에 世上에 나타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던들 아마 수레나 끌면서 마굿간에서 一生을 마쳤을는지도 모른다.
주(周)나라의 백락(伯樂-본명 孫陽)은 말(馬)을 알아보는 명수(名手)였다.
하루는 길을 가다 소금 수레를 끌고 가는 말을 만났다. 伯樂은 통탄했다.
용장을 태우고 천하를 누벼도 시원치 않을 千里馬가 일개 필부(匹夫)의 수레를 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준마를 시장에 내다 팔려고 하는 자가 伯樂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는 준마 한 마리가 있습니다. 이 말을 팔려고 아침마다 시장에 나간 지 사흘이 되었지만,
누구 하나 관심을 보이는 자가 없습니다. 한번 와서 저의 말을 봐준다면 사례하겠습니다.”
伯樂은 그래서 준마를 보러 시장으로 갔다.
그 말은 백락의 생각보다 훨씬 준수했으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탄하는 표정을 짓고는 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아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이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 말이 구하기 어려운 준마라고 생각하고는 앞다투어 사려고 했다.
그래서 말의 값은 껑충 뛰었고, 결국 말 주인이 처음 생각했던 값의 열 배나 받고 팔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伯樂이 있고 나서 千里馬가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백락이 한 번 돌아봤다는 말이다.
또 한유(韓愈)는 「잡설(雜說)」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옛날에 손양(孫陽)이라는 자가 말을 잘 알아봤기 때문에 그를 백락이라고 했다.
천리마가 있어도 알아볼 수 있는 백락이 없다면,
하찮은 주인을 만나 천대받고 혹사당하다가 결국에는 허름한 마구간에서 죽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세상에 이름을 떨치지 못하여 천리마라고 불러 주는 자가 없을 것이다.
천리마라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보통 말 이하의 능력 밖에는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에 훌륭한 인재가 있어도
그를 알아주는 현명한 군주나 재상을 만나지 못하면 재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천리마는 백락이 있음으로 해서 존재하게 된 것이고,
현명한 인재는 현명한 군주가 있음으로 해서 있게 된다는 말이다.
이때부터 영웅호걸을 千里馬에, 명군현상(名君賢相)을 伯樂에 비유하곤 한다.
아무리 훌륭한 인재도 그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재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뜻이다.
[주]백락(伯樂) : 본명은 손양(孫陽). 백락은 원래 천마(天馬)를 맡은 별의 이름이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손양이 말을 잘 감정하여 백락이라고 하였다.
여름 아침, 입에 문 얼음 한 조각 14. 외양
조선일보 2003-07-15 정민·한양대 국문과 교수
말을 살핌은 비쩍 마른 데서 놓치게 되고
선비를 알아봄은 가난에서 실수가 생긴다.
相馬失之瘦, 相士失之貧.
-김득신(金得臣), 《종남총지(終南叢志)》
《삼국사기》 〈온달전〉을 보면, 처음 온달이 말을 살 때에 공주는 이렇게 말한다.
“삼가 시장 사람의 말은 사지 마시고, 나라 말로 병들어 비쩍 말라 쫓겨난 놈을 고른 뒤에 이것을 사십시오.”
겉보기에 살지고 번드르르한 말은 시장 사람의 말이다.
병들어 비쩍 말라 뼈가 다 드러난 말은 나라의 마굿간에 있다가 병들어 쫓겨난 말이다.
하지만 혈통이 다르다.
시장 사람 말은 기껏해야 마차 끄는 데나 쓸 수 있지만, 전장에 나가 싸우는 장수의 말이 될 수는 없다.
세상에 천리마가 없었던 적은 없다.
다만 그것을 알아보는 백락(伯樂)이 없었을 뿐이다.
혈통 좋은 천리마도 기르는 사람을 잘못 만나면 비루먹어 병든 말이 된다.
겉만 보고는 잘 알 수가 없다. 비쩍 말랐다고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은 말 가운데 명마가 있다.
꾀죄죄한 행색 때문에 눈길 한 번 받지 못하는 가난한 선비 가운데 숨은 그릇이 있다.
하지만 우리 눈은 언제나 껍데기만 쫓아다닌다.
번드르한 겉모습에 현혹되어 속는다.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
◆ 김득신(1604-1684)은
본관 안동(安東), 자 자공(子公), 호 백곡(柏谷). 당시 한문4대가인 이식(李植)으로부터
“그대의 시문이 당금의 제일”이라는 평을 들음으로써 문명(文名)이 세상에 알려졌다.
공부할 때 옛 선현과 문인들이 남겨놓은 글들을 많이 읽는 데 주력했고
특히 <백이전(伯夷傳)>은 억번이나 읽었다고 하여 자기의 서재이름을 억만재(億萬齋)라 지었다.
저서에 ‘백곡집’(柏谷集) ‘종남총지’(終南叢志) 등이 있다.
화가 김득신(1754~1822)과는 다른 인물.
驥服鹽車(기복염거)
驥: 천리마 기, 服: 복종할 복, 鹽: 소금 염, 車: 수레 거
[출전] 《戰國策》 [참고] 백락일고(伯樂一顧)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준마가 헛되이 소금 수레를 끈다.
유능한 사람이 천한 일에 종사함
伯樂(백락)은 周(주)나라 때 사람으로 말을 감정하는데 도가 튼 名人(명인)이었다.
그가 훌륭한 말이라고 판정해 버리면 그 말 값이 하루아침에 열곱절은 쉽게 뛰었다.
그래서 伯樂一顧(백락일고)라는 말이 생겼다.
명마가 백락을 만나 세상에 알려진다는 뜻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제 아무리 천리마라해도 백락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唐(당)나라 때의 명문장가 韓愈(한유)도 "세상에 백락이 있고 나서 천리마가 있게 마련이다.
천리마는 언제나 있지만 백락은 항상 있는게 아니다.
그러니까 비록 명마라도 백락의 눈에 띄지 않으면
하인의 손에 고삐가 잡혀 끝내는 천리마란 이름 한 번 듣지 못하고 보통말들과 함께 마구간에서 죽고 만다"고 했다.
그런 백락이 어느날 긴 고갯길을 내려 가다가
명마 한 마리가 소금을 잔뜩 실은 수레를 힘겹게 끌고 오르는 것을 보게 되었다.
분명 천리마인데 이미 늙어 있었다.
무릎은 꺾이고 꼬리는 축 늘어졌고 소금은 녹아내려 땅을 적시고 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어 천리마가 이 꼴이 되었는가.
천리마도 백락을 보고는 '히힝' 하고 슬픈 울음을 울었다.
명마로 태어났으면서도 천한 일을 하고 있는 게 서러웠던 것이다.
백락도 같이 울면서 자기의 비단옷을 벗어 말에게 덮어 주었다.
천리마에게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백락의 마음인들 오죽 아팠을까.
천리마는 땅에 엎드려 숨을 몰아쉬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크게 우니 그 소리 하늘에 사무치더란 것이다.
이래서 '驥服鹽車'란 말이 나왔다.
'고전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고 싶어 분발하지 않으면 깨우쳐 주지 않는다 (0) | 2022.04.20 |
---|---|
천리마(千里馬)는 항상 있으나 백락(伯樂)은 드물다 (0) | 2022.04.19 |
등고자비(登高自卑) (0) | 2022.04.15 |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0) | 2022.04.14 |
우리의 마음이 사물에 대하여 취할 태도 (0) | 2022.04.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