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우는 직업
드니스 레버토프
자라는 것에 온전히 사로잡힌
그것은 아마릴리스
특히 밤에 자라며
동이 틀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바라보는 데는
내가 가진 것보다 약간의 인내심만 더
필요할 뿐
육안으로도 시간마다 키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해마다의 성장을 자랑스럽게 뛰어넘으며
헛간 문에 키를 재는 어린아이처럼
착실히 올라가는
매끈하고 광택 없는 초록색 줄기들
밑부분의 불그스름한 보랏빛 흔적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자라는
거의 알아차리기 힘든 수직의 돌기들
때로는 튼튼한 잎과 나란히
각각의 알뿌리에서 나온 두 개의 꽃대
둥근 끝을 가진 우아하고 기다란 줄기
충만함으로 빛나는 높고 꽉찬 꽃봉오리
어느 날 아침, 당신이 일어났을 때
그토록 빨리
첫 번째 꽃이 핀다
혹은 짧은 머뭇거림의 한 순간
막 피어나려는 것을 당신은 포착한다
다음 날, 또 다음 날
처음에는 새끼 망아지처럼 수줍어하다가
셋째 날과 넷째 날에도 망설이다가
마침내 그 튼튼한 기둥 꼭대기에서
의기양양하게 꽃이 피어난다
빛나는 고요함 속에서
수수하게 빛나는 풍만한 아가씨처럼
만일 사람이 저토록 흔들림 없는
순수한 추진력에 이끌려
한눈 팔지도 서두르지도 않고
온 존재로 꽃을 피울 수 있다면!
우리 자신을 가지고
꽃을 피울 수 있다면,
불완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꽃을
불완전한 것조차 감추지 않는 꽃을!
- 드니스 레버토프 <꽃 피우는 직업> (류시화 옮김)
The Métier of Blossoming
Fully occupied with growing - that's
the amaryllis. Growing especially
at night: it would take
only a bit more patience than I've got
to sit keeping watch with it till daylight;
the naked eye could register every hour's
increase in height. Like a child against a barn door,
proudly topping each year's achievement,
steadily up
goes each green stem, smooth, matte,
traces of reddish purple at the base, and almost
imperceptible vertical ridges
running the length of them:
Two robust stems from each bulb,
sometimes with sturdy leaves for company,
elegant sweeps of blade with rounded points.
Aloft, the gravid buds, shiny with fullness.
One morning - and so soon! - the first flower
has opened when you wake. Or you catch it poised
in a single, brief
moment of hesitation.
Next day, another,
shy at first like a foal,
even a third, a fourth,
carried triumphantly at the summit
of those strong columns, and each
a Juno, calm in brilliance,
a maiden giantess in modest splendor.
If humans could be
that intensely whole, undistracted, unhurried,
swift from sheer
unswerving impetus! If we could blossom
out of ourselves, giving
nothing imperfect, withholding nothing!
- Denise Levertov, from <This Great Unknowing: Last Poems>
☑ 류시화 - 아침의 시 28
사진_노년의 드니스 레버토프
아마릴리스는 수선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구근 식물로
'눈부신 아름다움', '침묵', '자랑스러움', '겁쟁이' 등 여러 개의 꽃말을 가지고 있다.
봄이면 시장통 좌판에서 아마릴리스 구근을 파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뿌리를 심으면 해마다 뿌리가 늘어난다.
둥근 구근에서 봄부터 싹을 내밀어 길게 꽃대가 자라다가 하룻밤 사이에 꽃이 핀다.
아름다운 꽃이 그렇듯이 개화 기간은 너무 짧다!
드니스 레버토프(1923-1997)는 영국 출생의 미국 시인으로
웨일즈 출신의 어머니와 러시아 하시디즘(유대교 신비주의)을 따르는 독일계 유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신비주의적 종교 성향이 '나의 세포를 구성했다'고 말할 정도로 깊은 영향을 받았다.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문학과 미술, 피아노, 발레 등 전과목을 배웠다.
자신이 예술가가 될 운명임을 어려서부터 느낀 그녀는 다섯 살 때 시인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12살에 자작시 몇 편을 T. S. 엘리엇에게 보냈으며, 엘리엇은 두 장에 달하는 격려 편지를 보내 주었다.
30대 후반에는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 뛰어들었다.
후반기에는 MIT, 스탠포드 대학에서 시와 종교를 가르쳤다.
퇴임 후에는 미국과 영국을 여행하며 시 강의와 시낭송을 하는 한편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강력히 규탄했다.
림프종 암에 걸린 후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영성과 시문학 강연을 했다. 그녀 자체가 한 송이의 열정적인 아마릴리스였다.
시인은 때로 자신이 말하고 싶어 하는 두세 줄의 문장을 쓰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긴 시를 쓰는 경우가 있다.
마치 아마릴리스가 봄부터 긴 꽃대를 꾸준히 밀어올려 마침내 줄기 끝에서 한 송이의 선홍색 꽃을 피우듯이
시인은 동이 틀 때까지 밤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침착하고 끈기있게 아마릴리스가 피어나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런 다음 마침내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며,
독자 또한 인내심을 가지고 시를 읽어 내려간 후에 그 감동적인 메시지에 도달한다.
그렇다,
우리 역시 자기 자신을 가지고 꽃을 피울 수 있다면! 불완전한 곳이 없는, 아니 불완전함조차 감추지 않는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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