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에 관한 다섯째 거짓말 – ‘복지병’과 재정 파탄
허핑턴포스트 2014년 12월 22일 | 업데이트됨 2015년 02월 21일 유종일
과거에 남미에 경제위기가 오면 언론을 비롯해서 보수진영에서는
이게 다 성장에 힘을 쓰기보다 복지에 돈을 낭비한 결과라는 식으로 평하곤 했다.
근래에는 남부유럽의 위기에 대해서도 같은 투다.
하지만 복지병 때문에 유럽 사람들이 나태하고 부패했다는 얘기는 적어도 한국 사람이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유럽 선진국들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부패지수는 훨씬 높으니까 말이다.
복지지출을 가장 많이 하는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노동생산성도 투명성도 세계 최고수준이다.
재정에 관한 열 가지 거짓말과 두 가지 진실 <5>
다섯째 거짓말 | '복지병'과 재정파탄
과거에 남미에 경제위기가 오면 언론을 비롯해서 보수진영에서는
이게 다 성장에 힘을 쓰기보다 복지에 돈을 낭비한 결과라는 식으로 평하곤 했다.
근래에는 남부유럽의 위기에 대해서도 같은 투다.
일례로 남부유럽 위기가 발발했을 당시 <한국경제>는 "유럽의 재정위기는 과잉 복지, 분수에 넘치는 과소비가 경제위기를 불러일으킨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전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에서 "유럽은 과도한 복지로 '복지병'을 유발, 근로의욕을 떨어뜨렸고
국민들을 나태하게 만들었고 그 나태는 필연적으로 부패를 불러왔다"며
그리스와 스페인 등이 과잉복지로 재정파탄을 맞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홍원 총리는 대국민 담화에서
"과다한 복지로 재정이 피폐해진 유럽 일부 국가들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1)
레이건이 복지여왕이라는 허구로 부자감세를 정당화한 것처럼
김무성 씨를 비롯한 많은 보수논객과 정치인들은 복지병이라는 허구로 복지국가 프로그램을 공격한다.
하지만 복지병 때문에 유럽 사람들이 나태하고 부패했다는 얘기는 적어도 한국 사람이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유럽 선진국들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부패지수는 훨씬 높으니까 말이다.
복지지출을 가장 많이 하는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노동생산성도 투명성도 세계 최고수준이다.
과도한 복지가 근로의욕을 감소시킨다는 것은 얼핏 생각해도 그럴듯하다.
'과도한'이라는 수식어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사회주의 하에서는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복지가 '과도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복지수준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에도 복지병은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복지지출이 이에 비해 1/3 정도밖에 안 되는 우리나라가 걱정할 문제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사실 복지병은 다분히 이데올로기적 창작물이고 대다수 복지국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린더트(Peter H. Lindert)는 <공공부문의 성장>에서 "복지의 비용은 제로"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실제 복지국가들은 근로유인을 왜곡하지 않도록 복지제도를 설계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2)
게다가 복지가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효과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복지지출은 건강과 교육수준 및 직업훈련의 향상 등 인적자본의 질을 높여서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효과도 있고,
삶이 안정됨에 따라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요구가 완화되고 구조조정도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으며,
내수를 진작하여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도 있다.
복지병의 또 다른 발현은 재정적자 혹은 재정파탄이다.
정치인들의 인기영합주의 때문에 당장엔 달콤하게 복지를 즐기면서도
이를 위한 비용부담은 회피함으로써 재정적자를 누적시키고 재정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재정적자는 복지수준과는 무관하다.
그리스나 스페인 등 근래에 재정위기를 겪은 나라들이 복지지출이 특별히 높은 나라가 아니다.
유럽평균수준에 불과하다. 스페인의 경우에는 재정이 매우 건전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은행부실이 발생했고
그것을 정부가 떠안아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복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재정위기다.
그리스의 문제는 복지지출을 늘리면서 그에 상응하여 세수를 늘리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스의 재정적자는 복지지출이 많아서가 아니라 제대로 세금을 걷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
실제로 복지지출 수준과 재정상태에는 별 상관관계가 없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과 일본은 선진국 중에서 복지가 가장 부실한 편이지만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하다.
반면 스웨덴, 덴마크 등 북구의 복지선진국들은 하나같이 재정이 건실하다.
이상에서 복지의 수준이 높아지면 '복지병'이 발생하고 재정파탄이 초래된다는 주장의 허구성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허구로 만드는 것은
복지제도 설계를 효율적으로 한다는 것과 복지지출에 대한 충분한 재원마련이다.
만약 제도설계가 엉망이고 재원마련이 안 되면 '복지병'도 재정파탄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리스가 바로 이에 해당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은 우려를 자아낸다.
'보편적 복지'를 획일적 복지로 오해해서 효율적 제도설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부분도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재원마련 없는 복지확대가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가 공히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는데,
이야말로 복지 포퓰리즘과 재정파탄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 허황된 공약은 물론 지킬 수 없는 것이었는데, 박근혜 정부는 증세를 회피하고 복지공약의 축소를 택했다.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보수언론의 주문을 따른 것이다.3)
__________________
1) <한국경제> 2010년 11월 26일 기사입력, [Cover story] 과잉복지 • 정부실패가 경제위기 초래. <뉴시스> 2014년 10월 30일 기사입력, [전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국회교섭단체 대표 연설. <조선닷컴> 2014년 11월 6일 기사입력, [전문] 정홍원 총리의 공무원연금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문.
2) Peter H. Lindert, Growing Public: Volume 1, The Story: Social Spending and Economic Growth since the Eighteenth Centu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3) "보수언론은 단 이틀을 참지 못했다. 선거가 치러진 지 하루가 지나고 21일 아침부터 보수언론은 일제히 이구동성으로 박 당선자에게 공약은 잊어버리라고 주문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공약의 재앙도 걱정해야", 조선일보 칼럼은 "반값세상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중앙일보 세상읽기는 "장밋빛 공약은 싹 잊어라"고 충고하고 나선 것이다. 한마디로 공약폐기 주문이었다." 유종일, "보수언론은 왜 이틀을 못 참았나?" 프레시안, 기사입력 2012.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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