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子, 告子章句下 十五章
天將降大任於是人 천장강대임어시인
하늘이 이러한 사람들에게 중대한 임무를 맡기려고 할 때에는 ….
맹자 曰
“순 임금은 역산에서 밭을 갈다가 요 임금에게 발견되어 입신(立身)하였다.
부열은 성벽을 쌓는(판축 - 토담을 쌓음) 일꾼들 사이에서 무정 임금에게 등용되었다.
교격은 생선과 소금을 파는 시장 가운데서 문왕에게 등용되었다.
관이오는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 가운데서 문왕에게 등용되었다.
손숙오는 해변에서 피난생활을 하다가 초장왕에게 등용되었다.
백리해는 저자에서 장사하다가 진목공에게 등용되었다.
하늘이 이러한 사람들에게 중대한 임무를 맡기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그들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들의 근육을 아프게 하고,
그들의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 몸에 가진 것이 없게 해서
그 행동을 실패하게 하여
그들이 해야 할 일과 어긋나게 한다.
이것은 마음을 분발하게 하고
성질을 참을성 있게 하여,
그들이 이제까지 해내지 못하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해 주기 위해서이다.
마음이 동하고 성품을 참는다는 것은 그 마음이 움직이고, 그 성품을 굳게 참고 견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성품은 또한 기품과 음식과 여색을 가리켜서 말한다.”
정자 曰
“만일 익기를 요하면 모름지기 그 속으로 좇아가야 할 것이다.
대체로 사람은 잘못을 범한 뒤에라야 고칠 수 있고,
번민과 고뇌가 얼굴과 목소리에 나타난 뒤에라야 해결의 방법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중인中人의 성품은 반드시 허물이 있은 뒤에 고치게 되는 것이니,
대개 평일에 삼가지 않는 고로 반드시 사세가 궁박하여,
마음에 곤란하고 생각이 막히게 된 연후에 능히 분발하여 흥기하게 되니,
기미를 밝게 살피지 못하는 고로
반드시 사리가 드러나서 사람의 빛에 징험하고,
사람의 소리가 발한 후에 경동하여 깨달음이 있다는 말이다.
안으로는 법도를 지키는 신하와 보필할 선비가 없고,
밖으로는 적국(敵國)이 없고 외환(外患)도 없다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그렇게 된 뒤에라야 우환(憂患) 속에서는 살 수가 있으나
안락(安樂) 속에서는 죽게 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위의 글을 살펴보면 사람이 사는 것은 우환에서 나오고,
죽고 망하는 것은 편안하고 즐거운 데서 나오는 것이다.
윤씨 曰
“곤궁하고 답답한 것은 능히 사람의 뜻을 굳게 하고,
사람이 어진 것을 익히지마는,
편안하고 즐거운 것으로써 잃는 자가 많다.”
告子章句下 十五章
孟子曰: [舜發於견畝之中, 傅說擧於版築之閒, 膠격擧於魚鹽之中, 管夷吾擧於士, 孫叔敖擧於海, 百里奚擧於市.
舜耕歷山, 三十登庸. 說築傅嚴, 武丁擧之. 膠격遭亂, 육販魚鹽, 文王擧之. 管仲囚於士官, 桓公擧以相國. 孫叔敖隱處海濱, 楚莊王擧之爲令尹. 百里奚事見前篇.
故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曾益其所不能.
降大任, 使之任大事也, 若舜以下是也. 空, 窮也. 乏, 絶也. 拂, 戾也, 言使之所爲不遂, 多背戾也. 動心忍性, 謂송動其心, 堅忍其性也. 然所謂性, 亦指氣稟食色而言耳.
程子曰: [若要熟, 也須從這裏過. ]
人恒過, 然後能改; 困於心, 衡於慮, 而後作; 徵於色, 發於聲, 而後喩.
恒, 常也. 猶言大率也. 橫, 不順也. 作, 奮起也. 徵, 驗也. 喩, 曉也. 此又言中人之性, 常必有過, 然後能改. 蓋不能謹於平日, 故必事勢窮蹙, 以至困於心, 橫於慮, 然後能奮發而興起; 不能燭於幾微, 故必事理暴著, 以至驗於人之色, 發於人之聲, 然後能警悟而通曉也.
入則無法家拂士, 出則無敵國外患者, 國恒亡.
此言國亦然也. 法家, 法度之世臣也. 拂士, 輔弼之賢士也.
然後知 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 ]
以上文觀之, 則知人之生全, 出於憂患, 而死亡由於安樂矣.
○尹氏曰: [言困窮拂鬱, 能堅人之志, 而熟人之仁, 以安樂失之者多矣. ]
(참조 칼럼)
성공이 무서운 이유
한국경제 2005. 10. 22 김연신 <한국선박운용 대표>
경영학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 가장 신기하게 들었던 말이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였다.
성공한 기업이 자기의 성공에 안주하다 보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창조적 파괴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는
교수님의 설명이 뒤따랐다.
필자의 의문은 ‘왜 성공한 기업은 자기의 성공에 집착할까?’하는 것이었다.
영화 이야기를 잠깐 하자. 해리슨 포드가 나오는 액션극(이름이 뭐더라?)에 보면
주인공의 길을 막아서는 덩치 큰 악당이 긴 칼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주인공을 위협한다.
왼쪽은 천길만길 낭떠러지, 오른쪽은 깎아지른 절벽.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 바들바들 떠는 여자 주인공(대개 금발미녀이다).
이때 주인공은 씩 웃으며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간단히 일발 발사하고 악당은 낭떠러지에 떨어진다.
악당에게는 칼솜씨가 성공의 비법이었고, 시대는 변해 총이 칼을 이기는 때가 왔건만
과거의 성공에 집착해 총 가진 사람 앞에서 칼을 휘두른 것이 악당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세상이 이렇게 액션 영화같이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품질관리를 지상의 경영 목표로 삼고 회사를 품질 향상의 길로 매진토록 한 어떤 전자제품 회사는
신기술 개발이라는 경영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빈사 상태에 이르게 됐고,
강력한 유통망과 브랜드 인지도를 자랑하던 한 맥주회사는
소비자의 입맛 변화를 읽지 못해 시장점유율이 급속히 하락하기도 했다.
악당은 왜 칼을 휘둘러야 했고, 전자제품회사는 왜 품질관리를 내세워야 했고,
어떤 회사는 왜 소비자 입맛 변화를 안 따라가고 유통망에 집착했을까?
이 의문은 실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이 의문을 풀 수 있으면 변화와 혁신은 이미 반 이상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개인이 이 의문에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면 건강과 부귀영화가 그의 것이 될 것이고,
기업이 이 의문을 풀 수 있다면 지속적인 성장 발전을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독자의 몫이어야 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자기의 머리로 자기의 손으로 찾아낸 해답이 아니고는 실생활에서, 기업의 경영에서 적용해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이 쥐어준 해답으로 어찌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개인의 변화는 개인의 자기 성찰이 맨 먼저 있어야 하며,
기업의 변화와 혁신은 기업이라는 집단의 통렬한 자기반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의 삶이나 기업의 경영 모두 실천의 영역이지 이론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2000여 년 전에 살았던 맹자가 이 의문에 힌트를 주고 있다.
그는 말한다.
"삶이란 근심 속에 존재해 있는 것이며,
죽음이란 편하고 즐거운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生於憂患, 死於安樂)"
개인의 경우 근심이 있다는 말은 살아 있다는 말이고,
편하고 즐거운 날이 지속된다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새겨도 될 터이다.
또 기업의 경우에는 끊임없이 걱정거리가 제기되고 경영자가 문제를 풀기 위해 고민하는 회사는 건강한 회사이며,
모두 잘된다는 보고만 있고 회사의 장래를 위협하는 요인은 없다는 보고만 올라오는 회사는
이미 죽음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보아도 될 터이다.
칼 솜씨로 성공한 사람은 칼의 세상이 바뀌는 것을 모르고 있는 한 안락하지만,
이는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성공 체험이라 할 것이고,
품질관리로 성공한 기업에는 품질관리에 매진하는 한 안락하기는 하나
회사의 쇠퇴에 이른 무서운 성공 체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고 보면
과거에 어떤 일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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