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물고기 뛰어오르고 솔개는 날아오르고

by freewind 삶과사랑 2022. 7. 8.
728x90

물고기 뛰어오르고 솔개는 날아오르고

[한시감상 094]

 

한국고전번역원       2014-09-04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물고기 뛰어오르고 솔개는 날아오르고

 

물고기 뛰고 솔개 나니 위아래가 한 이치

이러한 경계는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네

무심히 미소를 머금고 내 자리를 돌아보니

해질 녘 숲 속에 홀로 서 있네

 

魚躍鳶飛上下同

這般非色亦非空

等閒一笑看身世

獨立斜陽萬木中

 

- 이이(李珥, 1536~1584)

풍악산 작은 암자에서 노승에게 주다[楓嶽贈小菴老僧] 병서(幷序)

율곡전서(栗谷全書)

 

 

해설

 

율곡 이이가 풍악산에 구경 갔을 때 작은 암자에서 노승을 만나 진리의 요체에 대해 대화하고 나서

그에게 적어 준 시이다.

이 시를 짓게 된 배경을 적은 서()를 대화체로 정리해 보면 이렇다.

 

율곡 : “여기서 무얼 하시오?”

노승 :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율곡 : “무엇으로 요기를 하시오?”

노승 : (소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이 내 양식이오.”

율곡 : (그가 어떤 주장을 펼지가 궁금해져서 물었다.) “공자와 석가 중 누가 성인이오?”

노승 : “선비는 늙은 중을 놀리지 마시오.”

율곡 : “불교는 오랑캐의 가르침으로, 중국에서는 시행할 수 없소.”

노승 : “() 임금은 동이(東夷) 사람이고, 문왕(文王)은 서이(西夷) 사람인데, 그렇다면 이들도 오랑캐란 말이오?”

율곡 : “불가(佛家)에서 묘처(妙處)라고 하는 것은 유가 안에도 있는 것이오. 그러니 유가를 버리고 불가에서 구할 게 뭐 있겠소?”

노승 : “유가에도 마음이 곧 부처다.’라는 말이 있소?”

율곡 : “맹자가 성선(性善)을 얘기할 때마다 반드시 요순(堯舜)을 들어 말한 것이 마음이 곧 부처다.’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다만 우리 유가에서는 실리(實理)를 볼 뿐이오.”

노승 : (중은 수긍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말했다.) “()도 아니고 공()도 아니라는 말이 무슨 뜻이오?”

율곡 : “이것 또한 눈앞의 경계요.”

노승 : (빙그레 웃었다.)

율곡 :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어오른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색이오, 공이오?”

노승 :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닌 것, 그것이 진여(眞如)의 본체요. 이런 시와 비교나 되겠소?”

율곡 : (웃으며 말했다.) “말이 있게 되면 바로 경계가 생기는 것인데, 어찌 그것을 본체라 할 수 있겠소? 만약 그렇다면 유가의 묘처는 말로써 전할 수 없는 데 있는데, 부처의 도()는 문자(文字) 너머에 있지 않은 것이 될 것이요.”

노승 : (깜짝 놀라서 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당신은 속된 선비가 아니오. 나를 위해 시()를 지어서,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글귀의 뜻을 풀이해 주시오.”

 

이 시는 이런 만남을 통해 탄생했다.

 

첫 구의 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난다는 것은 시경(詩經)』「대아(大雅) 한록(旱麓),

솔개는 하늘까지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어오른다.[鳶飛戾天魚躍于淵]”는 말에서 취한 것으로,

천지 사이에 만물이 생동하는 이치가 잘 드러남을 형상화한 말이다.

 

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나는 것을 색이라 하겠는가? 공이라 하겠는가?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라고 한 말은 색이기도 하고 공이기도 하다.”라는 말도 될 것이고,

색이면서 공이고 공이면서 색이다.”라는 말도 될 것이다.

 

율곡은 생동하는 우주의 이치를 바라보며, 시선을 돌려 자신을 바라본다.

자신이 지금 존재하는 곳은 노을이 비끼는 숲속이다.

 

이 글을 읽고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곳을 돌아본다.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곳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해도 충분할 만큼 모순 없는 곳이 아니고,

산은 푸르고, 물은 흐른다.”라고 할 만큼 자연의 이치에 따라 움직이는 곳도 아니다.

물고기는 고인 물 속에서 죽어서 떠오르고, 솔개는 하늘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오늘날 이 땅에서 본체를 두고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어렵지 않게 답이 나온다.

 

산은 푸르게, 물은 맑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