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뛰어오르고 솔개는 날아오르고
[한시감상 094]
한국고전번역원 2014-09-04 (목)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물고기 뛰어오르고 솔개는 날아오르고
물고기 뛰고 솔개 나니 위아래가 한 이치
이러한 경계는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네
무심히 미소를 머금고 내 자리를 돌아보니
해질 녘 숲 속에 홀로 서 있네
魚躍鳶飛上下同
這般非色亦非空
等閒一笑看身世
獨立斜陽萬木中
- 이이(李珥, 1536~1584)
「풍악산 작은 암자에서 노승에게 주다[楓嶽贈小菴老僧] 병서(幷序)」
『율곡전서(栗谷全書)』
☑ 해설
율곡 이이가 풍악산에 구경 갔을 때 작은 암자에서 노승을 만나 진리의 요체에 대해 대화하고 나서
그에게 적어 준 시이다.
이 시를 짓게 된 배경을 적은 서(序)를 대화체로 정리해 보면 이렇다.
율곡 : “여기서 무얼 하시오?”
노승 :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율곡 : “무엇으로 요기를 하시오?”
노승 : (소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이 내 양식이오.”
율곡 : (그가 어떤 주장을 펼지가 궁금해져서 물었다.) “공자와 석가 중 누가 성인이오?”
노승 : “선비는 늙은 중을 놀리지 마시오.”
율곡 : “불교는 오랑캐의 가르침으로, 중국에서는 시행할 수 없소.”
노승 : “순(舜) 임금은 동이(東夷) 사람이고, 문왕(文王)은 서이(西夷) 사람인데, 그렇다면 이들도 오랑캐란 말이오?”
율곡 : “불가(佛家)에서 묘처(妙處)라고 하는 것은 유가 안에도 있는 것이오. 그러니 유가를 버리고 불가에서 구할 게 뭐 있겠소?”
노승 : “유가에도 ‘마음이 곧 부처다.’라는 말이 있소?”
율곡 : “맹자가 성선(性善)을 얘기할 때마다 반드시 요순(堯舜)을 들어 말한 것이 ‘마음이 곧 부처다.’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다만 우리 유가에서는 실리(實理)를 볼 뿐이오.”
노승 : (중은 수긍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말했다.) “색(色)도 아니고 공(空)도 아니라는 말이 무슨 뜻이오?”
율곡 : “이것 또한 눈앞의 경계요.”
노승 : (빙그레 웃었다.)
율곡 :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어오른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색이오, 공이오?”
노승 :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닌 것, 그것이 진여(眞如)의 본체요. 이런 시와 비교나 되겠소?”
율곡 : (웃으며 말했다.) “말이 있게 되면 바로 경계가 생기는 것인데, 어찌 그것을 본체라 할 수 있겠소? 만약 그렇다면 유가의 묘처는 말로써 전할 수 없는 데 있는데, 부처의 도(道)는 문자(文字) 너머에 있지 않은 것이 될 것이요.”
노승 : (깜짝 놀라서 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당신은 속된 선비가 아니오. 나를 위해 시(詩)를 지어서,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글귀의 뜻을 풀이해 주시오.”
이 시는 이런 만남을 통해 탄생했다.
첫 구의 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난다는 것은 『시경(詩經)』「대아(大雅) 한록(旱麓)」에,
“솔개는 하늘까지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어오른다.[鳶飛戾天,魚躍于淵]”는 말에서 취한 것으로,
천지 사이에 만물이 생동하는 이치가 잘 드러남을 형상화한 말이다.
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나는 것을 색이라 하겠는가? 공이라 하겠는가?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라고 한 말은 “색이기도 하고 공이기도 하다.”라는 말도 될 것이고,
“색이면서 공이고 공이면서 색이다.”라는 말도 될 것이다.
율곡은 생동하는 우주의 이치를 바라보며, 시선을 돌려 자신을 바라본다.
자신이 지금 존재하는 곳은 노을이 비끼는 숲속이다.
이 글을 읽고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곳을 돌아본다.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곳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해도 충분할 만큼 모순 없는 곳이 아니고,
“산은 푸르고, 물은 흐른다.”라고 할 만큼 자연의 이치에 따라 움직이는 곳도 아니다.
물고기는 고인 물 속에서 죽어서 떠오르고, 솔개는 하늘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오늘날 이 땅에서 본체를 두고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어렵지 않게 답이 나온다.
“산은 푸르게, 물은 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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