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에 관한 둘째 진실 – 재정 건전성의 중요성
허핑턴포스트 2015년 01월 27일 | 업데이트됨 2015년 03월 29일 유종일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는 우리에게 금리인상과 재정긴축, 그리고 급격한 구조조정을 요구했었다.
그런데 2008년 월가가 위기에 빠지자 미국정부는 이와는 정반대의 정책을 펼쳤다.
미국처럼 거대한 경제력과 기축통화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국채투매에 대한 우려 없이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에 맞서기 위해 팽창정책을 실시할 수 있지만,
한국처럼 그렇지 못한 경우에 팽창정책은 자칫 자본유출을 가속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비대칭 현상이 발생한다.
경제력이 강한 나라는 편리하게 재정정책을 사용할 수 있지만 경제력이 약한 나라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재정에 관한 열 가지 거짓말과 두 가지 진실 <12>
둘째 진실 | 재정건전성의 중요성
앞선 글에서 필자는 정부의 부채가 후손에게 빚을 물려주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바 있다.
한편 필자를 포함한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이명박 정부가 부자감세 등 무책임한 재정정책으로 정부부채를 급증시킨 것을 비판한다.
모순 아닌가?
세 가지 이유에서 모순이 아니다.
첫째는 조세저항이다. 정부부채의 증가는 이자비용의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만큼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납세자에게 세금을 걷어서 국채소유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세대 내의 이전이지
세대 전체에 부담을 주는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납세자 입장에서 세금을 더 내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조세행정의 투명성과 조세제도의 형평성이 부족하고
정부 지출의 효율성에 대한 불신이 큰 상황이기 때문에 조세저항이 매우 강하다.
더구나 부유층에 집중되어 있는 국채소유자들에게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는다면 저항은 더욱 거셀 것이다.
이런 조세저항으로 세금인상이 어려워지면 결국 복지를 비롯하여 다른 긴요한 재정지출이 삭감될 수도 있다.
둘째는 미래의 위기에 대한 대처능력이다.
이미 재정이 악화된 상태에 있으면 재정정책을 활용하여 경제위기에 대처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
기존의 정부부채가 적을 경우에는 필요에 따라 과감한 국채발행과 적자재정 편성을 부담 없이 할 수 있지만
이미 정부부채가 많은 경우에는 그럴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GDP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최근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향후 복지수요의 증가와 통일비용에 대비할 필요도 있어서 주의를 요한다.
셋째는 국채의 상당부분을 외국인이 소유하는 경우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외채로 조달했다는 뜻이다.
이 경우에는 정부부채 증가가 실제로 후세대의 부담이 된다.
외국인에게 이자지급과 원금상환을 하는 것은 세대 내 이전이 아니고
이를 감당하는 세대의 소득을 줄여 외국인에게 소득을 넘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담이 커지면 실질적인 부도위험을 낳게 된다. 물론 원화표시 국채인 경우에는
언제라도 통화증발로 채권상환을 할 수 있으니 여전히 기술적인 의미에서 부도위험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 입장에서 원화의 통화증발이 예상되면 이에 따른 원화가치 하락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원화표시 국채를 투매할 것이고, 이는 곧 국채가격의 하락 즉 국채금리의 상승과 환율 상승을 촉발한다.
실질적으로 부도 위험이 증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장의 우려가 충분히 크면 금리와 환율이 급등하면서 금융위기를 촉발한다.
만약 국채가 외화표시로 발행되었다면 통화증발로 갚을 수가 없기 때문에 정부가 채무불이행 사태에 빠질 수 있다.
시장에서 채무불이행의 위험이 높다고 보면 국채금리가 상승할 뿐만 아니라,
외국자금이 빠져나가고 환 투기가 일어나면서 외환위기에 빠지게 된다.
세계에서 GDP대비 정부부채가 압도적으로 가장 많은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자국화폐로 발행한 국채의 대부분을 자국민이 보유하고 있어서 부도위험이 없는 경우에 속한다.
하지만 여전히 첫째와 둘째 문제는 존재한다.
일본은 조세저항과 정치력 부족으로 매년 엄청난 적자재정을 꾸리면서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으며,
그 결과 복지가 부실하다.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탄력을 받지 못하고 브레이크가 걸린 중요한 이유는 소비세 인상이었는데,
아베 정권이 초기의 재정팽창 기조를 유지하지 못하고 소비세를 인상한 것은
이미 과도하게 늘어나있는 정부부채 때문이었다.
2001년 극심한 외환위기를 겪은 아르헨티나를 비롯해서 과거에 여러 개도국들이 재정위기와 외환위기를 겪었는데,
위의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개도국들의 경우에는 설사 자국화폐로 국채를 발행하더라도,
이를 외국인이 직접 보유하거나 혹은 외국인이 국채를 보유한 국내은행에 대출을 해주는 등
간접적으로 보유할 때 급격한 자본유출에 의한 재정위기와 금융위기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2010년 이후 불거진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도 이에 해당한다.1)
그런데 미국의 경우는 확실히 예외다.
미국은 GDP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100%를 훌쩍 넘고 누적 경상수지 적자도 매우 크다.
그 결과 중국, 일본, 산유국 등 외국에서 미국의 국채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이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낸 재정절벽(fiscal cliff) 문제를 차치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채 투매에 의한 위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발행하는 달러는 기축통화로서 달러화 표시 미국 국채는 안전자산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이를 투매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미국이 아니더라도 경제력이 크고 자국화폐가 국제통화로서의 지위가 강하면
그만큼 국채투매와 이에 따른 위기의 가능성은 낮아진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는 우리에게 금리인상과 재정긴축, 그리고 급격한 구조조정을 요구했었다.
그런데 2008년 월가가 위기에 빠지자 미국정부는 이와는 정반대의 정책을 펼쳤다.
미국처럼 거대한 경제력과 기축통화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국채투매에 대한 우려 없이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에 맞서기 위해 팽창정책을 실시할 수 있지만,
한국처럼 그렇지 못한 경우에 팽창정책은 자칫 자본유출을 가속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비대칭 현상이 발생한다.2)
경제력이 강한 나라는 편리하게 재정정책을 사용할 수 있지만
경제력이 약한 나라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이상에서 살펴본 정부부채 누적에 관한 우려는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이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경기부양이 당장에 급박한 상황에서 적자재정을 반대하는 것은 여전히 잘못이다.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은 호경기 시에 흑자재정을 편성해서 달성해야지
불경기 시에 적자재정을 회피해서 달성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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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들은 유로화를 쓰기 때문에 유로화표시 국채가 자국화폐표시 국채라고 할 수 있지만 유로화는 한 나라가 마음대로 발행할 수 있는 화폐가 아니고 유럽중앙은행이 발행하기 때문에 외화표시 국채와 유사한 효과를 가진다.
2) 그렇다고 하더라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은 정부부채가 매우 낮았고, 경상수지 적자도 크지 안았기 때문에 IMF가 요구한 과도한 긴축정책은 분명히 잘못된 처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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