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에 관한 아홉째 거짓말 – 리카도 대등정리
허핑턴포스트 2015년 01월 13일 | 업데이트됨 2015년 03월 15일 유종일
리카도 대등정리는
케인즈에 반대하고 정부의 경제개입을 백안시하는 시카고학파 시장만능주의자들의 구미에 딱 들어맞았다.
이들은 신이 나서 이 이론을 주장했지만 실제 데이터를 이용해서 경험적으로 입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리카도 대등정리는 온갖 비현실적 가정 하에서 성립되는 논리적인 말장난일 뿐
실제 경제의 작동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실제 데이터가 이론과 부합할 리 없었다.
하지만 데이터가 협조하지 않으면 데이터를 구슬리기도 하고 고문도 해서
이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일은 경제학에서 상투적으로 벌어지는 일이어서
리카도 대등정리와 같은 비현실적인 이론도 쉽게 폐기되지는 않는다.
재정에 관한 열 가지 거짓말과 두 가지 진실 <9>
아홉째 거짓말: 리카도 대등정리와 루카스의 착각
리카도 대등정리(Ricardian equivalence theorem)라는 게 있다.
정부지출 수준이 일정할 때,
정부가 재원조달 방법을 변화시키는 것은 민간의 경제활동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이론이다.
세금을 삭감하고 대신 국채를 발행해서 정부지출 재원을 조달하는 것은 흔히 사용하는 경기부양 정책인데,
이 이론에 따르면 그런 정책은 경기부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가 언젠가는 늘어난 부채를 갚기 위하여 세금을 올려야 할 텐데,
이를 예상한 사람들이 감세로 현재 소득이 늘어난 만큼 저축을 늘려 미래의 증세에 대비하기 때문에
민간소비지출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19세기 초에 번득이는 통찰력의 소유자 리카도(David Ricardo)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지만,
현명한 그는 이런 논리가 현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논리는 리카도와 같은 통찰력이나 현명함을 갖추지 못한 배로(Robert Barro)에 의해
현대경제학에서 부활되었고,
케인즈의 주장과는 달리 정부가 재정정책으로 경기조절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자리잡았다.1)
리카도 대등정리는
케인즈에 반대하고 정부의 경제개입을 백안시하는 시카고학파 시장만능주의자들의 구미에 딱 들어맞았다.
이들은 신이 나서 이 이론을 주장했지만 실제 데이터를 이용해서 경험적으로 입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레이건의 감세정책으로 재정적자가 불어난 시기에 민간저축이 늘어나기는커녕 줄어든 사실을 비롯해서,
일반적으로 경험적 데이터가 이 이론에 우호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카도 대등정리는 온갖 비현실적 가정 하에서 성립되는 논리적인 말장난일 뿐
실제 경제의 작동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실제 데이터가 이론과 부합할 리 없었다.2)
하지만 데이터가 협조하지 않으면 데이터를 구슬리기도 하고 고문도 해서
이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일은 경제학에서 상투적으로 벌어지는 일이어서
리카도 대등정리와 같은 비현실적인 이론도 쉽게 폐기되지는 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적극적 재정정책에 나서자,
이에 반대하는 보수적 경제학자들이 리카도 대등정리를 애용했다.
그런데 정치적 동기가 앞서다 보니 그랬는지
이 과정에서 저명한 학자들이 망신스러운 논리적 오류를 범한 적도 많았다.
대등정리는 현실성이 결여되었지만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이를 바탕으로 재정정책을 반대하다 보니 논리적 오류까지 포함한 과도한 주장들을 해댄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시카고 학파의 리더인 루카스(Robert Lucas)가
2009년 3월 뉴욕의 외교위원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에서 행한 연설을 들 수 있다.
그는 정부가 다리를 지으면서 화폐증발로 자금을 조달하면 이는 통화팽창정책일 뿐이고,
세금으로 자금을 조달하면 돈을 납세자에게 걷어서 다리공사에 관여한 사람들에게 옮겨준 것일 따름이니
수요진작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세금을 걷지 않고 국채를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한다고 해도
리카도의 대등정리에 의해 소용이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루카스는 재정정책이란 게 이렇게 쓸모 없는 것인데
멍청한 케인즈주의자들이나 정부지출 확대를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이
경기를 부양한답시고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런데 루카스의 주장은 착각과 오류 그 자체였다.
경기부양을 위해 새로 다리를 건설 하는데, 그 비용 천만 달러를 국채발행으로 조달했다고 하자.
이때 리카도 대등정리에서 가정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미래의 조세증가를 합리적으로 예측하여 생애소득에 대한 기대치가 천만 달러 줄어든다고 하자.
그러면 소비를 줄여야 하는데, 예를 들어 매년 백만 달러 정도만 줄여도 충분한 조정이 될 것이다.
당장 천만 달러만큼 소비를 줄일 필요는 전혀 없다.
정부지출로 수요는 당장 천만 달러 증가하지만 납세자들의 저축 증가로 인한 소비수요 감소는
기껏해야 백만 달러에 불과할 것이기에 총수요는 늘어난다.
루카스가 범한 근본적인 오류는 리카도의 대등정리가 전제하는 정부지출 수준이 일정하다는 가정을 간과한 것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다리를 건설한다는 것은 일시적인 지출증가지 영원한 지출증가가 아니다.
정부가 앞으로 매년 천만 달러씩 지출을 늘린다면
이에 대비하는 합리적 소비자는 매년 천만 달러만큼 소비지출을 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경기침체기에 경기부양을 위한 일시적인 지출증가에 대응해서 동일한 양의 소비수요 감소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
루카스는 '합리적 기대 가설'을 제기하여
거시경제학에서 반케인즈혁명을 주도한 경제학계의 거장이고 노벨상 수상자다.
그가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참 희한한 일이다.
진실을 덮어버리는 이데올로기의 힘은 막강하다.
루카스의 시카고 대학 동료이자 역시 노벨상 수상자인 파마(Eugene Fama)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버블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하여 비웃음을 샀는데,
위기 이후에도 버블은 전혀 없었고 금융시장은 효율적으로 작동했다고 강변하여 듣는 이들의 귀를 의심케 하였다.3)
마찬가지로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선호하는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은 아무리 수많은 경험적 데이터와 사례가
재정정책의 효력을 입증하더라도 재정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결코 바꾸지 않는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1) Robert J. Barro, "Are Government Bonds Net Wealth?"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82 (6): 1095-1117, 1974.
2) 대등정리가 성립하려면 모든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합리적 기대를 형성하고, 정부지출 수준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인구도 일정해야 하며, 자본시장이 완전해서 저축과 차입이 자유롭고 저축 이자율과 차입 이자율이 동일해야 한다. 한결같이 지극히 비현실적인 가정들이다.
3) John Cassidy, "Interview with Eugene Fama," New Yorker, 2010. 1. 13.
'My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정에 관한 첫째 진실 – 돈을 함부로 쓰면 망한다 (0) | 2022.04.07 |
---|---|
재정에 관한 열째 거짓말 – 정부 부채와 후손들의 부담 (0) | 2022.04.06 |
재정에 관한 여덟째 거짓말 – 팽창적 긴축 (0) | 2022.04.04 |
재정에 관한 일곱째 거짓말 – 세율과 경제성장 (0) | 2022.04.01 |
재정에 관한 여섯째 거짓말 – 워렌 버핏과 누진세의 허구 (0) | 2022.03.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