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에 관한 여덟째 거짓말 – 팽창적 긴축
허핑턴포스트 2015년 01월 06일 | 업데이트됨 2015년 03월 08일 유종일
가장 황당한 것은 엑셀의 코딩 실수로 평균을 계산할 때 5개국이 누락된 것이었다.
실수들을 모두 교정하고 계산하니 부채비율이 90% 이상일 때의 평균성장률이 2.2%였다.
이 내용이 발표되자 언론은 큰 관심을 보였고 저명한 하버드의 교수들은 일대 망신을 당했다.
하지만 긴축정책이 초래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보상할 길은 없었다.
재정에 관한 열 가지 거짓말과 두 가지 진실 <8>
여덟째 거짓말 | 팽창적 긴축과 하버드 교수들의 망신
정부가 긴축을 하면 총수요가 줄어들고, 정부가 재정팽창을 하면 총수요도 늘어난다는 것은
상식이기도 하고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표준적인 이론이기도 하다.
특히 민간 수요의 부족으로 경기가 침체되었을 때는
정부가 국채발행을 통해 과잉저축을 흡수하고 재정지출을 통해 수요를 팽창시키는 것이 매우 효과적인 처방이다.
이는 케인즈 경제이론의 핵심이며, 역사를 통해 수없이 반복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 2010년 유럽과 미국에서는 정말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재정적자와 과도한 정부부채 문제를 안고 있는 정부가 과감하게 긴축정책을 실시하면
시장의 신뢰가 높아져서 정부수요 축소의 직접적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는 민간수요의 증가가 일어나고
결과적으로 경기가 팽창한다는 "팽창적 긴축(expansionary austerity)" 이론이 득세하였다.
특히 하버드 대학의 라인하트와 로고프 교수가 발표한 '부채 시대의 성장'이라는 논문은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다.1)
이 논문은 2차 대전 이후 선진국의 정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90% 이하일 때는 성장률이 3~4%대로 비슷하지만, 90% 문턱을 넘으면 -0.1%로 뚝 떨어진다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정부부채가 급등하여 긴축을 외치는 보수적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높았고,
그리스 위기의 발발로 과도한 정부부채의 위험성이 부각되던 시점이었다.
경기불황을 심화시킨 2010년의 긴축정책은 이 논문에 의해 크게 탄력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경기회복세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하지만 이후 쏟아져 나온 수많은 관련 논문들은 부채비율이 90%가 넘을 때 성장률이 급락한다는 결과를 찾지 못했다. 저자들은 자신들이 사용한 데이터를 적시에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의심을 자아냈고,
2013년에 마침내 데이터를 얻은 매사추세츠주립대학의 폴린 교수와 대학원생들은
원래 논문의 치명적인 실수들을 찾아냈다.
가장 황당한 것은 엑셀의 코딩 실수로 평균을 계산할 때 5개국이 누락된 것이었다.
실수들을 모두 교정하고 계산하니 부채비율이 90% 이상일 때의 평균성장률이 2.2%였다.
이 내용이 발표되자 언론은 큰 관심을 보였고 저명한 하버드의 교수들은 일대 망신을 당했다.
하지만 긴축정책이 초래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보상할 길은 없었다.
재정건전성은 중장기적으로 유지해야 할 목표이지 결코 매년 매순간 지켜야 하는 원칙이 아니다.
특히 수요부족으로 경기가 침체되어 있을 때 재정건전성을 내세워 긴축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리스다. 2009년 10월 정권을 탈환한 사회당 정부는 이전 보수당정부가 회계장부를 조작하였으며
실제 정부부채와 재정적자 상황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열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2010년의 유럽재정위기가 시작되었다.
IMF와 유럽중앙은행 등은 그리스에 구제금융의 대가로 강도 높은 긴축을 요구했고,
그리스 정부는 지출삭감과 조세인상으로 무려 GDP의 15%에 달하는 긴축을 감행했다.
그 결과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은 -18%로 곤두박질 쳤고, GDP 대비 정부부채는 오히려 증가하였다.
일찍이 미국에서 대공황이 발생한 후 후버 정부가 경기침체로 세수가 줄어드는데
재정건전성을 유지한다고 지출을 줄임으로써 경기를 더욱 악화시켰던 것과 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이 위기를 맞은 그리스나 다른 남부유럽 국가들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2008년 발발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연이은 "대침체(Great Recession)" 탓에 재정이 악화되었던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유럽 대다수 국가들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그리스 위기 이후 긴축으로 돌아선 것이다.
이러한 긴축은 대침체 이후 경기회복이 역사상 가장 느리고 완만하게 진행되어온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폴 크루그만은 <지금 당장 공황을 끝내자>라는 책에서 대공황 때는 몰라서 그랬다지만
지금은 알면서도 왜 긴축을 하느냐고 따져 물으며 재정확대를 주장한 바 있다.2)
"팽창적 긴축"이라는 해괴망측한 이론은 긴축을 실시한 모든 나라들이,
또한 긴축의 규모에 정확하게 비례하여 경기후퇴를 겪었다는 사실에 의해 완벽하게 무너졌다.
처음에는 이 이론을 지지했던 국제통화기금(IMF)도 나중에는 반성문을 썼다.3)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팽창적 긴축" 이론이 득세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많은 경우 재정적자에 대한 반대는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와는 관계없이 불순한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다.
경제에서 정부의 공적 역할이 확대되는 것을 막고
사적 이윤창출의 기회를 최대화하며 그 여건을 최적화하고자 정부의 긴축을 옹호하는 것이다.
빚쟁이 정부더러 허리띠를 졸라 매라고 하는 것은 채권자와 자산가에게는 유리한 것이지만
경기침체로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정체하여 고통 받는 노동자들에게는 가혹한 것이다.
일찍이 케인즈와 동시대에 독립적으로 유효수요 이론을 개발한 칼레츠키는 완전고용을 유지하는 것이
경제정책의 기술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에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완전고용의 유지가 가능하지만
자본가와 금리생활자 등이 이런 정책을 반대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던 것이다.4)
_________________________
1) Carmen Rheinhart and Kenneth S. Rogoff, "Growth in a Time of Debt," American Economic Review, Vol. 100 No. 2, May 2010, 573-578. 논문 발표 당시에는 라인하트는 메릴랜드대 소속이었다.
2) Paul Krugman, , Norton, 2012). 필자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IMF가 긴축재정을 강요한 것을 비판한 한겨레신문 칼럼 <재정건전성의 신화>에서 동일한 논지를 펼친 바 있다.
3) Independent Evaluation Office of the IMF, IMF Response to the Financial and Economic Crisis, 2014.
4) 유종일, "경기부양의 정치경제학,"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경제에세이 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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