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에 관한 열가지 거짓말과 두 가지 진실
과학과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허핑턴포스트 2015년 01월 30일 | 업데이트됨 2015년 04월 01일 유종일
특이하게도 한국에서는 경기부양에 관한 태도와 정치적 성향 사이의 관계가 서구와 정반대로 나타난다.
경기가 나쁠 때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을 해야 한다는 것은 케인즈 경제학의 핵심 주장이며,
서구에서는 이러한 입장이 대체로 진보적 정치세력이 취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우리나라의 민주진보 진영은 경기부양을 경원시하고 심지어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다.
김영삼 정부의 '신경제100일계획'은 흔히 나쁜 정책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경제참모였던 이정우 교수가 "인위적 경기부양"의 유혹을 뿌리쳤다고 거듭 자랑하는 것은
이러한 지적 풍토를 반영한 것이다.
재정에 관한 열 가지 거짓말과 두 가지 진실 <13>
연재를 마치며 | 과학과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안타깝게도 경제학은 아직 경험적 과학으로써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
완벽하게 통제된 상황에서 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고,
경제현실은 워낙 많은 변수들이 합작해서 만들어내는 것이어서 예측이 빗나가더라도 핑계거리는 무수히 많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 이론에는 이해관계, 이데올로기, 정치적 편향, 통속적 편견 등이 개입될 가능성이 많다.
특히 재정문제는 워낙 정치적으로 민감한 것이어서 이데올로기에 의한 사실과 논리의 왜곡이 난무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한국에서는 경기부양에 관한 태도와 정치적 성향 사이의 관계가 서구와 정반대로 나타난다.
경기가 나쁠 때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을 해야 한다는 것은 케인즈 경제학의 핵심 주장이며,
서구에서는 이러한 입장이 대체로 진보적 정치세력이 취하는 입장이다.
미국에서 크루그만(Paul Krugman)과 같은 진보적인 학자들은 더욱 과감한 양적완화 정책과 재정확대 정책을 주장하고,
보수 학자•정치인•언론은 긴축정책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그런데 묘하게도 우리나라의 민주진보 진영은 경기부양을 경원시하고 심지어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다.
김영삼 정부의 '신경제100일계획'은 흔히 나쁜 정책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경제참모였던 이정우 교수가 "인위적 경기부양"의 유혹을 뿌리쳤다고 거듭 자랑하는 것은
이러한 지적 풍토를 반영한 것이다.
이는 아마도 한국자본주의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것일 터이다.
구체적으로는 박정희 시대 이래 한국의 경제정책을 지배해온 성장지상주의 패러다임의 문제다.
심각한 금융부실이나 산업간•지역간•계층간 불균형 등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번번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모든 문제를 급속 성장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이런 맥락에서 경기부양이나 경제성장 자체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이루는 방식이 구조적인 문제를 악화시키는 방식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잉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자본시장을 개방하여 외국에서 싼 금리에 단기자금을 마음대로 들여오게 한 것이나,
양극화가 심화되어 서민들의 호주머니는 비어있는데 신용카드를 남발하도록 해준 것이나,
정책당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 부동산규제 완화를 통한 경기부양 등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오랫동안 재정지출도 복지와 교육 등 사회지출에는 인색하고,
토목사업이나 투융자 등 경제사업에 과도하게 집중되었던 것도 문제다.
이명박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이나 최근 최경환 부총리가 추진하는 경제활성화 정책도
이상과 같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이명박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내며
종합부동산세 폐지, 법인세 감면 등 감세정책을 밀어붙였던 강만수 전 장관이 비망록을 냈다.1)
여기서 그는 자신의 감세정책이 부자감세로 '매도'된 것에 분개하면서,
세율의 인하가 세수의 증대를 가져온다는 래퍼곡선 이론을 또다시 주장하고 있다.
이미 자신의 감세정책으로 인하여 세수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재정압박이 심화된 것이 다 드러났는데도
이런 견강부회를 계속한다.
경제정책 논의가 얼마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우되는지,
또 왜 한국에서는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이 경기부양에 회의적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다고 해도 경제이론이 아주 쓸모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고,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현실을 비교적 잘 설명해주는 이론들도 많이 개발되어 있다.
편향과 편견을 떨쳐내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실을 바라보며,
엄밀하게 논리를 펼친다면 진실의 언저리에는 다가갈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재정문제가 첨예한 정치이슈가 되어 있다.
부자증세와 서민증세 등 조세정책,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등 복지정책,
기초노령연금과 공무원 연금 등 연금정책 등이 다 논란거리다.
이런 논란이 정치적 힘 겨루기에 그치지 않도록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이 객관적인 분석과 현명한 대안들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는 진영논리를 넘어서는 진지하고 과학적인 공론의 장을 키워나가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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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만수,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실록>, 삼성경제연구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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