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서자여사(逝者如斯)’의 가르침

by freewind 삶과사랑 2022. 4. 25.
728x90

서자여사(逝者如斯)’의 가르침

[현대인을 위한 동양사 돈오돈수]

 

 

공자 왈 가는 것이 물과 같구나

자주 등장하는 물 이야기해석도 엇갈려

 

중단 없는 공부 강조

만물의 무상함 탄식

 

서자여사(逝者如斯)’.

이 문구는 지난해 말 <교수신문>이 해마다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후보에 올랐던 구절이다.

2500여 년 전 공자의 말이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다는 점이 놀랍지만 바로 그런 것이 고전의 힘이다.

 

<논어> ‘자한(子罕)’편에 나오는 그 전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선생님이 냇가에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이 이 물과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 도다.”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아마도 제자들과 함께 물가에 서 있다가 한 말이겠지만, 앞뒤 연결 없이 이 문장 하나만 있으니

어느 곳에 있는 냇물인지, 어떤 모양으로 흐르는 것을 보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인지 등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공자는 물을 꽤나 좋아한 모양이다.

그래서 <맹자> ‘이루(李婁)’ 하편에는 맹자와 그 제자 서자 사이에 오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서자가 물었다.

공자께서 자주 물을 칭송하시어 물이여! 물이여!’라고 하셨는데, 어째서 물을 가지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인지요?”

 

맹자가 답하였다.

근원이 좋은 물은 뭉클뭉클 솟아서 밤낮으로 쉬지 아니하므로

앞에 있는 구덩이를 다 채운 뒤에 나아가 사방 바다에 이르나니,

학문에 근본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기 때문에 물을 가지고 말씀하신 것이다.

진실로 근본이 없으면 7~8월 빗물이 몰려들어 도랑을 가득 채우더라도 그 물이 다 마르는 것은 잠깐일 뿐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명성이 실제보다 지나친 것을 부끄러워하는 법이다.”

 

하지만 맹자의 해석처럼 공자가 정말 공부를 물 흐름에 비유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막스 베버는 <논어>를 읽으면 인디언 추장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고 했다.

 

영화를 봐도 인디언 추장의 대사는 뜬금없는 말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만큼 말에 함축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앞에 인용한 공자의 말도 많은 함축이 있으며,

더구나 앞뒤 맥락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어쩌면 30여 년 동안 천하를 돌아다니며 무려 72명의 임금을 만나 자신의 뜻을 실현해 보려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한 스스로의 고단한 삶을 돌아보며 탄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이 문장을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만물의 무상함을 탄식했다는 뜻으로

천상지탄(川上之嘆)’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쉼 없이 흘러가는 물을 보고 자연의 영속성을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공자는 칠십이 넘어섰을 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나이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知天命)”고 말했다.

여기서 천명을 알았다는 자신이 아무리 돌아다녀도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 없는 것이

운명(運命)임을 알았다는 뜻도 되고,

그럼에도 사회 개혁을 위해 쉼 없이 노력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使命)임을 알았다는 뜻도 된다.

 

그렇다면 공자가 가는 것이 이 물과 같구나라고 한 참뜻은 무엇일까?

자신의 고단한 삶을 한탄한 것일까, 아니면 그렇더라도 자연의 흐름처럼 쉼 없이 애써야 한다는 것일까?

 

송나라 때 성리학을 일으킨 정이와 주희는

이 구절에 물이 쉼 없이 흐르는 것처럼 해가 지면 달이 뜨고, 추위가 지나면 더위가 오듯

잠깐의 멈춤도 없이 바뀌는 것이 자연의 운행 법칙이라면서, “공부하는 사람도

이처럼 잠깐의 중단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특히 주희는 오십네 살이 되던 1183년 푸젠성 충안현 우이산(武夷山)에 우이정사(武夷精舍)를 세운다.

우이산은 푸젠성 최고의 명산으로 36개의 봉우리와 99개의 암석,

그리고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가 8에 걸쳐 아홉 굽이를 돌아 나가는 절경이다.

 

주희는 그 가운데 다섯 번째 골짜기에 우이정사를 세우고 제자들을 길렀으며,

굽이굽이 아홉 계곡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우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지었다.

그리고 여섯 번째 계곡에 있는 향성암(嚮聲岩)에 본인이 직접 쓴 서자여사(逝者如斯)’ 네 글자를 새겨 넣었다.

 

가끔씩 제자들과 배를 타고 계곡을 유람할 때마다 올려다보고 마음을 다잡았을 법하다.

아마도 이 사자성어는 바위에 새긴 것이라기보다 두 차례에 걸쳐 10년 동안 미미한 벼슬자리에만 있다가

자연으로 돌아온 주희 자신의 마음에 새긴 것이리라.  

 

좋은 글귀는 문인들도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당송 팔대가의 대표격인 소동파가 제갈량·조조·유비·손권이 어우러져 자웅을 겨루던 적벽 아래에서 노닐다가 지은

그 유명한 적벽부(赤壁賦)’에서도 서자여사네 글자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내가 말하였다.

그대 또한 저 물과 달을 알고 있소?

가는 것이 이 물과 같아서 아주 가 버리는 것이 아니요, 차고 이지러지는 것은

저 달과 같아서 끝내 없어지지도 늘어나지도 않는 것이오.

변한다는 점에서 보면 세상 만물이 한순간도 변하지 않을 수 없고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면

만물과 나는 모두 끝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겠소?

(蘇子曰 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而又何羨乎)

 

흐르는 냇물을 보면 보통 사람들은 냇가에 앉아 발 담글 생각을 하거나 뛰어들어 고기도 잡고 멱도 감으려 들겠지만

예전 지식인들은 그 안에 자신들의 생각을 담았다.

 

문인화에는 올곧게 살고 싶은 자신들의 생각을 보여 주려고 곧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를 그렸고,

공자가 만 번 굽이쳐 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향한다고 했던 만절필동(萬折必東)’의 정신으로 외세에 맞서기도 했다.

다음 번에 흐르는 물을 만나면 우리는 그 속에 어떤 생각을 담아 볼까?

 

 

김교빈호서대학교 문화기획학과 교수

 

김교빈 교수는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졸업. 한국철학사상연구회장·인문콘텐츠학회장·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를 역임하고, 현재 호서대 문화기획학과 교수,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재단법인 민족의학연구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동양철학 에세이> <한국철학 에세이> <동양철학과 한의학> , 역서로 <중국 고대철학의 세계> <중국 의학과 철학> <기의 철학> 등이 있다.

 

 

- 출처 : Posco 신문  2010. 2. 11

 

댓글